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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 콤비의 온도

뮤지컬 〈레드북〉 콤비의 온도

이선영 작곡가 · 한정석 작가 인터뷰

글.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83년생 동갑내기인 이선영 작곡가와 한정석 작가는
2013년 초연된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큰 주목을 받았다.
두 번째 창작뮤지컬 〈레드북〉의 공연을 앞두고 둘의 만남부터 작품에 대한 소회까지,
찰떡호흡을 자랑하는 두 창작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창작뮤지컬 〈레드북〉은 지난 1월 한국뮤지컬협회가 주최한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등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11개 부문에 오른 대 형 창작뮤지컬 〈벤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후보를 냈다. 비록 1개도 수상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창작산실에서 2주간 시범공연 된 게 전부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레드북〉을 만든 것은 2013년 초연된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큰 주목을 받았던 이선영 작곡가-한정석 작가 콤비다. 83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두 사람은 〈레드북〉까지 성공시키며, 두 번째 작품을 내놓는 실력파 신예들의 부진을 말할 때 쉽게 언급되는 ‘소포모어 징크스’도 털어냈다. 〈레드북〉이 1년간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2월 6일부터 3월 30일까지 세종M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앞두고 이선영-한정석 콤비를 만나 작품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그 여자 작곡 그 남자 극작
두 사람은 어떻게 콤비가 됐을까

한국 뮤지컬계는 2010년대 들어 실력 있는 신예 창작자들을 잇따라 배출하고 있다. 2000년대 라이선스 뮤지컬을 중심으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면 내공을 갖춘 창작자들의 등장은 질적 성장을 의미한다. 〈어쩌면 해피엔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인터뷰〉, 〈팬레터〉 등 근래 주목받은 창작뮤지컬은 모두 신예 창작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선영-한정석 콤비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신예 창작자들 가운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어떻게 콤비가 됐을까.

한정석 “2000년대 후반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의 아카데미에서 선영씨를 처음 만났어요. 당시만 해도 대학 커리큘럼에 뮤지컬 창작 수업이 손에 꼽을 때라 뮤지컬에 관심 있던 창작자들이 이 아카데미에 많이 모였는데요. 제 경우 대학교 뮤지컬 공모전에서 당선되면서 이 아카데미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었어요. 원래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 분야의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공모전 덕분에 뮤지컬이란 분야에 눈뜨게 된 거죠. 이후 2011년 말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뮤지컬 공모를 보고 선영씨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했습니다.”

이선영 “대학 졸업 후 방송음악 분야에서 일했는데, 아는 선배의 부탁으로 단국대 연영과 학생들의 뮤지컬 공연을 도와주게 됐어요.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그땐 밤을 새워가며 재밌게 작업했습니다.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제 심장을 뛰게 만들었거든요. 이후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불과 얼음’ 아카데미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수업에서 작가와 작곡가가 파트너를 바꿔가며 뮤지컬 넘버를 썼는데, 정석씨랑 잘 맞았어요. 이후 친구가 된 정석씨랑 자연스럽게 공동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작업한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2011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뮤지컬 부문, 2012년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창작뮤지컬 육성사업 예그린 앙코르 쇼케이스에 선정됐다. 그리고 2013년 연우무대 제작으로 본 공연을 시작한 뒤 거의 매년 공연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 두 번째로 무대에 올라간 〈레드북〉은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가 안나와 변호사 브라운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2015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을 시작해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우수 신작에 선정돼 이듬해 시범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올해 굵직한 연예기획사 FNC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에프엔씨애드컬쳐가 공동제작에 나서는 한편 뮤지컬계 스타배우 아이비가 합류하는 등 면모를 일신해 본 공연의 막을 올리게 됐다.

한정석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준비할 때 저는 뮤지컬에 대해 아는 게 적었어요. 그나마 선영씨가 현장에서 음악감독 조감독을 한 덕분에 뮤지컬에 대한 이해가 있었죠. 저희 둘은 여러 지원사업의 단계를 밟아가면서 많이 배우고 작품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레드북〉의 경우 우란문화재단에서 창작자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면서 가이드음원 준비까지 마쳤고, 그걸로 창작산실 공모에 뽑혔습니다. 창작산실 자체도 대본공모·면접·쇼케이스 등 단계별로 진행됐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덜 고생스러웠던 것 같아요. 이런 공모제가 여러 개 생긴 덕분에 신예 창작자들이 작품을 개발하는데 걸리는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고 봐요. 2013년 연우무대를 통해 본 공연이 이뤄진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2014년 일본 아뮤즈그룹 초청으로 도쿄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에서 공연했을 땐 정말 감격스럽더라구요.”
이선영 “이번 〈레드북〉 공연을 앞두고 저희는 최대한 연습실에 나갔어요. 오경택 연출가를 비롯해 배우들이 언제든 저희의 의견을 물을 때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대본과 악보가 나온 뒤에도 연습 과정에서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더라구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 때는 저희가 정말 초심자라서 정신없었지만 이번엔 그때에 비하면 디벨로핑 과정에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어요. 특히 배우들과 친해지면서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배우가 캐스팅 되면서 저희도 몰랐던 극중 배역의 매력이 보이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페미니즘을 코믹하고 사랑스럽게 담은
한국 뮤지컬계의 ‘황금 콤비’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남북한 군인들이 희망과 꿈을 찾는 이야기다.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황산》에 등장하는 짤막한 일화를 모티브로 했다. 사연도 개성도 각각인 6명의 남북한 군인이 ‘여신님’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꿈을 드러내는 과정이 재밌다. 그리고 〈레드북〉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 안나와 고지식한 변호사 브라운이 티격태격하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각각 전쟁과 페미니즘이라는 심각한 소재가 무겁지 않으면서도 코믹하게 그려져 호평을 받았다. 특히 남성 작가인 한정석이 그동안 국내 뮤지컬계에서 보기 어려웠던 용감하고 진보적인 여성상을 그려낸 것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정석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거예요. 소재나 배경은 물론 장르가 바뀌더라도 제가 삶에서 중시하는 정의와 선(善)을 담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코믹한 게 좋아요. 그래서인지 제 작품에 갈등이 적고 악역이 없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걸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추구한다면 너무 거창할까요? 신작인 〈레드북〉의 경우 처음엔 단순히 여성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점점 작품 리서치를 하면서 여성 예술가에 대한 편견과 부당한 대우 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개발할 때는 페미니즘이 지금처럼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는데요. 시범공연 이후 제가 놓쳤던 부분 등은 이번에 다시 수정을 가했습니다. 덧붙여 극중 두 주인공인 안나와 브라운에는 제 평소 모습이 각각 투영됐다고 생각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레드북〉은 반짝반짝 빛나는 대본만이 아니라 귀에 착착 감기는 사랑스런 멜로디로도 칭찬을 받았다. 특히 각각의 넘버가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통일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선영 “창작자마다 작업방식이 다르겠지만 저희는 서로 상의하면서 장면을 만들어갑니다. 보통 대본이 먼저 나온 뒤에 곡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저희는 제가 먼저 음악으로 장면의 콘셉트를 제시하기도 해요. 또는 정석씨가 가사의 개괄적인 가이드라인을 준 뒤 제가 곡을 쓰면 정석씨가 다시 구체적인 가사를 붙이기도 하구요. 제 경우 음악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멜로디와 리듬을 활용해 통일감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방식은 저희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두 사람은 〈레드북〉에 앞서 두 번째 작품으로 〈카인과 아벨〉을 준비 중이었다.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작품은 동생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된 형이 동생에게 누명을 씌워 파멸시키려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13년 충무아트홀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작뮤지컬 콘텐츠 발굴 프로그램 ‘제1회 뮤지컬하우스 블랙 앤 블루’에 선정돼 이듬해 쇼케이스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숙성시켜야 한다는 판단 아래 보류됐다.

한정석 “첫 작품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예상을 뛰어넘는 호평을 받은 뒤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컸습니다. 〈카인과 아벨〉처럼 무거운 주제를 다루려면 제가 좀 더 공부를 해야 되겠더라구요. 어쩌면 〈레드북〉을 두 번째 작품으로 완성시킨 덕분에 당시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이후 여러 제작사로부터 작품 제안을 받았지만 제 기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거절했어요. 저는 작품을 쓰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인데, 제작사는 그만큼 시간을 줄 수가 없더라구요. 지금은 저와 선영씨가 중심이 되어 재밌는 작품을 차근차근 만들고 싶어요.”
콤비로서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두 사람은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웃음부터 터뜨렸다. 오랫동안 작업을 하는 동안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친구가 됐기 때문이란다.
이선영 “각각의 취향은 다르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에요. 솔직히 작업하는 동안 저희끼리 갈등과 의견대립도 많았어요. 하지만 갈등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바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파트너 관계가 됐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전히 작업할 때마다 갈등은 생기지만 화해하기까지의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요.”
이선영-한정석 콤비가 한국 뮤지컬계의 ‘황금 콤비’로 오랫동안 활동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다. 두 사람이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귀띔한 다음 작품도 시놉시스만 들어도 신선하고 재밌을 것 같다.

뮤지컬 레드북

뮤지컬 레드북

기간 : 2018.02.06 (화) ~ 2018.03.30 (금)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화-금 오후8시 / 토 오후3시, 오후7시 / 일 오후2시, 오후6시

연령 : 만 12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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