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뮤지컬 대 영화

2017 뮤지컬 다시보기_ 뮤지컬 〈밀사〉, 〈마타하리〉

뮤지컬 대 영화

2017 뮤지컬 다시보기_ 뮤지컬 〈밀사〉, 〈마타하리〉

글. 이유진(공연칼럼니스트)

삶과 죽음이 엇갈리던 시대, 여기 진심을 감추고 몸을 숨기며 살았던 이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에 충실하고 스스로의 삶을 아꼈던 이들도 있다.
비극 속 거친 운명을 거부하며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 두 편의 뮤지컬과 영화로 묶어 소개한다.
뮤지컬 〈밀사〉 vs. 영화 〈밀정〉, 그리고 뮤지컬 〈마타하리〉 vs. 영화 〈얼라이드〉

숨어서 살았던 이들의 숨겨진 삶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 vs. 영화 〈밀정〉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파견되었던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 그들의 이야기는 1923년 일제 소속 경찰관 황옥이 의열단과 함께 중국에서 국내로 폭탄을 반입했다가 발각된 ‘황옥경부사건’을 다룬 영화 <밀정>을 떠올리게 한다. 진심을 감추고 몸을 숨기며 살았던 그들의 숨겨진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끊임없이 의심했던 시대

“왜 지켜야 합니까, 이 한심한 조선을. 왜 구해야 합니까, 이 불쌍한 임금을.”
헤이그 특사로 지목된 이위종은 묻는다. 일본에게 잠식당한 조선을 왜 지키고 구해야 하는지. 명성황후 시해의 참극을 눈으로 목격하고,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몸을 피해 성장한 그에겐 간절한 질문이자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질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헤이그 특사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그 답을 찾는다. 나라를 잃고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은 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려 애썼던 사람들을 소개한다. 영화 <밀정>도 다르지 않다.
“여기 다들 밀정이 아니란 증거 있소?”
누구나 밀정이 될 수 있었던 시대와 그래서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본 고등경찰 이정출은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의열단 김우진에게 접근하지만, “한 번만 눈감아 달라”는 그의 부탁에 갈등의 기로에 선다. 상해에서 국내로 폭탄을 반입하기 위한 의열단의 작전 속에서 그 또한 이위종처럼 스스로 답을 찾는다. 일본에 잠식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했던 시대, 어느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의 공기가 수많은 사람들을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비단 그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되돌아온다. 과거를 되짚으며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로 향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임을 상기시키며 말이다.

그리고, 반짝이는 모든 것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과 영화 <밀정>이 흥미로운 지점은 역사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인물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의 주인공 이위종은 함께 헤이그 특사로 활동했던 이상설, 이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의 주미 공사와 주러 대사를 역임한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각국을 떠돌며 7개 언어에 능통했던 그는 러시아 귀족의 딸과 국제결혼을 하며 화려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의 간절한 설득은 그를 변화시킨다. 조선을 의심했던 그는 어느새 “조국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하는 자신의 진심을 발견한다. 그가 “내 곁을 떠난 수많은 동지들의 눈물”을 노래하며 칠흑 같은 어둠에서 빛나는 ‘반짝이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순간 객석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도 바로 그 진심 때문일 거다.
영화 <밀정>도 의열단 역사에서 스쳐가는 이름이었던 이중간첩 황옥을 모티브 삼은 이정출을 앞세워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더라고.” 상해임시정부에서 통역 일을 하다 어쩌다 일본 경찰의 눈에 들어 순사가 된 이정출은 의열단과 일본 경찰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갈등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의열단을 통해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반짝이는 것’을 찾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영화 <밀정>이 거둔 의미 있는 성취다. 일본에 잠식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끊임없이 판단해야만 했던 시대를 이야기한 뮤지컬 <밀사-숨겨진 뜻>과 영화 <밀정>의 제목엔 ‘비밀’의 뜻을 품은 한자 ‘밀(密)’이 있다. 진심을 감추고 몸을 숨기며 살았던 그들의 숨겨진 삶에서 우리는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두 작품이 전하는 귀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뮤지컬 〈마타하리〉 vs. 영화 〈얼라이드〉

뮤지컬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당한 무희 마타하리의 이야기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럽을 장악했지만,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그녀는 ‘팜므파탈’의 아이콘으로 기억되어왔다. 그러나 뮤지컬 <마타하리>의 무대를 보고 나면 마타하리는 사랑에 충실하고 스스로의 삶을 아꼈던 여인으로 또렷이 남는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던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얼라이드>처럼 말이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이야기

실화의 힘은 강렬하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이 엇갈렸던 전쟁이 배경이라면 그 힘은 배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비극 속에서 살았던 여인 마타하리가 백 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까지 회자되는 이유이자 뮤지컬 <마타하리>가 그녀를 무대 위에 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 무대 위에서 그녀는 아름다운 춤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대의 비극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며 ‘다른 사람으로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노래한다.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했지만 결국엔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아르망의 진심이 그런 그녀의 노래에 힘을 보탠다.
영화 <얼라이드>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 대사 암살이라는 공동의 임무를 맡은 영국 정보국 장교 맥스와 프랑스 비밀요원 마리안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다.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인 스파이와 프랑스 레지 스탕스가 임무 중에 만나 결혼을 결심하지만, 정보기관의 반대에 부딪혔던 실화에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각본가 스티븐 나이트는 “한 번 들으면 영원히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계기를 전한 바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진실과 거짓의 굴레에 빠진 연인의 이야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더할 나위 없다.

나를 위해 더 간절한 사랑

전쟁의 한복판에서 서로를 속일 수밖에 없었던 연인의 이야기는 태생적 비극을 품고 있기에 안타깝고, 그만큼 간절하며,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리고 뮤지컬 <마타하리>와 영화 <얼라이드> 모두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자 애쓰는 여성 캐릭터가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이끈다. ‘그녀’들에게 사랑은 단지 ‘그’를 향한 절실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타하리가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아르망을 선택한 이유는 ‘진짜 나를 향한 갈망’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마타하리는 과거의 상처를 덮기 위해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진 가짜 이름일 뿐,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그녀에게 아르망과의 사랑은 ‘마타하리’라는 가짜 이름 뒤에 숨겨뒀던 ‘마가레타 거트루드 젤르’ 라는 진짜 이름으로 삶을 이어가겠단 의지다. 자신을 위해 간절한 사랑을 품은 그녀가 당당하게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얼라이드>의 마리안이 맥스와의 사랑을 지키려 하는 이유 또한 그가 ‘내 감정은 항상 진심’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리안과 맥스의 만남은 임무 실행을 위해 철저히 가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음모와 배신이 만연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웃음과 허구의 신분으로 맺어진 그들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가 되어간다. 그리고 마리안은 진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비극적 선택을 감행한다. 스파이라는 임무에 옥죄어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며 살아왔지만, 더 이상 자신이 품은 사랑의 진실을 속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게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이야기고,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인물들은 모든 장르에서 사랑받는 단골 주인공이다. 그러나 마타하리와 마리안 두 여인이 유독 애잔한 여운을 남기는 건, 비극을 마주할지언정 스스로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단단한 결의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의에 힘을 더한 배우들의 열연이 여운에 깊이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