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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정, 배삼식, 정영두 음악극 〈적로〉를 만들기까지

최우정, 배삼식, 정영두
음악극 〈적로〉를 만들기까지

글.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공연칼럼니스트)

작곡가 최우정, 극작가 배삼식, 안무가 정영두.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음악극 〈적로〉는 세 아티스트가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공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두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의 삶이 세 아티스트를 통해 무대 위에 어떻게 펼쳐졌을까.
지난 3일 첫 공연 직후 세 아티스트를 만나 〈적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사진 : 작곡가 최우정, 극작가 배삼식, 안무가 정영두

사실 첫 공연을 마치자마자 인터뷰라니 세 아티스트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관객도 극장 안팎에 떠도는 첫 공연의 묘한 흥분을 느끼지만 작품을 직접 만든 창작자에게 그 긴장감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창작 초연 첫 날이다 보니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세 아티스트는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최우정 “작곡가로서 이번 작업이 좋았던 것은 배삼식, 정영두 선생님이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음악극은 작곡가만이 아니라 작가, 연출가가 모두 음악적 언어를 알아야만 요소요소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된 작품이 나옵니다. 이번이 저희 셋이 함께 하는 첫 작업이었지만 나중에 또 기회가 마련되면 다른 작품도 하고 싶습니다.”

사진 : 최우정

〈적로〉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서울돈화문국악당이 가장 야심차게 준비해온 프로젝트다. 대금 연주자 출신인 김정승 예술감독은 지난해 개관 당시 민속악부터 궁중음악, 미래 한국의 현대음악까지 아우르는 공연장을 표방한 바 있다. 140석의 작은 공연장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 김 감독은 대금 산조의 창시자이자 ‘진도아리랑’을 창작한 박종기와 이왕직아악부의 간판스타로 한·양합주(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합주)의 원조인 김계선 명인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음악극을 선택했다.
한국전통악기와 서양클래식악기가 함께 순수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유일한 실내악단인 CMEK(한국현대음악앙상블) 출신답게 김 감독은 국악 전문 작곡가 대신 연극, 오페라, 무용 등 극음악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쳐온 현대음악 작곡가 최우정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현대음악전문연주단체인 TIMF앙상블 예술감독인 최우정은 이윤택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바보각시〉, 〈오구〉,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등 여러 작품의 음악을 맡은 바 있다. 최근엔 서울시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개발 워크숍 프로그램인 ‘세종 카메라타’가 배출한 최고 작품이라는 〈달이 물로 걸어오듯〉으로 높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박종기, 김계선 명인을 소재로 한 음악극을 만들자는 김 감독의 요청에 그가 극작가 배삼식을 추천하면서 이번 작업이 성사됐다.

최우정 “예전에 배 작가님과 작업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지인의 소개로 음악극 〈벽 속의 요정〉(배삼식 각색)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음악성을 살린 가사가 정말 탁월했어요. 배 작가님은 자신이 음악을 모른다고 겸손해 하시지만 〈적로〉만 보더라도 음악극의 형식이 대본에 들어 있기 때문에 작곡가로서 작업하기 수월했습니다. 작품의 제목부터 음악적 이미지가 담겨 있으니까요.”

사진 : 배삼식

배삼식은 현재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간판 극작가로 각색과 창작을 오가며 수작을 쏟아내고 있다. 각색으로는 〈벽 속의 요정〉, 〈허삼관 매혈기〉 등이 대표적이고, 창작으로는 〈3월의 눈〉, 〈열하일기만보〉, 〈은세계〉, 〈하얀 앵두〉, 〈벌〉 등이 꼽힌다. 지난 7월 국립극단에서 공연된 신작 〈1945〉는 올해 최고의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우정의 바람대로 그는 박종기, 김계선 명인의 이야기를 찰진 언어와 시적 이미지로 풀어냈다. ‘적로’라는 제목은 방울져 떨어지는 이슬(滴露),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 입김에 의한 물방울(笛露), 예술가의 혼이 서린 악기 끝의 핏방울(赤露)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필멸의 소리로 불멸의 예술을 꿈꾸던’ 두 대금 명인을 다룬 이야기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박종기 명인의 경우 타계 직전 공연에서 피를 토해 대금 끝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고 한다.

배삼식 “이번 작품은 아랍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 가운데 ‘모든 낮과 밤, 희미한 갈대 소리, 그 음악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소리, 음악이라는 것이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가 사라지잖아요. 마치 아침에 잠깐 맺혔다 사라지는 이슬처럼요. 덧없지만 예술가는 반짝이는 그 순간을 찾아서 한평생을 헤맵니다.”

이번 작품은 박종기와 김계선 명인의 실제 삶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예술가의 뜨겁고도 고독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이것은 허구의 인물인 기생 산월과 두 사람의 술자리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이들은 헛헛한 마음으로 서로의 소리와 춤을 보듬는다.

배삼식 “일제 강점기 또 다른 예인이었던 기생에 대한 이야기를 꼭 넣고 싶었어요. 당시 권번 소속 기생은 노래와 춤 등 가무는 물론이고 악기도 능숙하게 다뤘습니다. 일부는 영화에 출연하거나 음반을 내기도 했죠. 다만 극중 산월이라는 인물은 어느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은 아닙니다.”

정체를 극 후반까지 밝히지 않는 기생 산월 때문에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 드라마틱해 보인다. 하지만 극적인 사건이나 뚜렷한 서사가 없이 담백하게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플롯 구조나 극적 갈등이 없는 배삼식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이번 작품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후반에 가면 이야기의 임팩트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오히려 꽉 짜인 드라마의 틀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음악은 배삼식이 먼저 노랫말을 쓴 뒤 최우정이 곡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최우정은 신디사이저(황경은), 클라리넷(이승훈), 대금(박명규), 아쟁(한림), 타악(김준수) 등 전통 국악기와 서양 악기를 혼합해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최우정 “일제 시대는 문화예술의 암흑기라고만 생각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의외로 풍성했어요. 기존의 한국 전통음악 외에 재즈, 스윙, 트로트,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들어와 있었거든요. 서곡인 ‘경성의 밤’만 보더라도 그 당시 유행했던 동서양의 음악 스타일을 섞은 겁니다. 이번 음악 작업에는 김정승 감독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국악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줬거든요.”

박종기 역에는 소리꾼 안이호가, 김계선 역에는 소리꾼 정윤형이, 기생 산월 역에는 여창가객 하윤주가 출연한다. 특히 여창가곡이 서양의 예술가곡과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최우정은 산월의 노래 반주를 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으로 처리했다. 전반적으로 국악과 서양음악의 조화가 매끄럽지만 출연진의 목소리와 악기의 소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무선 마이크를 활용한 것에 대해서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기계의 도움 없이 자연음향을 표방한 공연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우정 “최근 국악계에서 자연음향에 대한 담론이 거센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돈화문국악당을 비롯해 몇몇 자연음향 공연장이 만들어졌는데요. 무대에 올리는 공연의 특성에 맞게 마이크를 사용하거나 자연음향을 택하거나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덧붙여 과거 전통 가옥이 아니라 서구식 공연장 건축 양식 위에서 자연음향 추구는 좀 더 생각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사진 : 정영두

자연음향 문제 외에도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정통 국악 공연에는 어울려도 드라마가 있는 극을 올리기에는 제약이 크다. 66㎡의 작은 무대는 시도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서도 움직임에 능한 안무가 정영두가 연출가로 선택됐다. 음악을 분석적으로 파고드는 현대무용 안무가로 이름 높은 그는 원래 대학 시절 연극을 전공했으며 전통춤도 꾸준히 연마했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를 연출하기도 했으며 바람곶, 앙상블 시나위, 꽃별 등 국악 연주가와도 꾸준히 작업했다. 그는 지난 2015년 국립국악원이 연출가 박근형의 공연을 배제한 것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1인 시위를 벌임으로써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한 무용계의 변화를 촉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영두 “두 명인의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됐지만 예술가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다만 무대가 워낙 협소하기 때문에 연출하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대 구석 한편에 호젓한 자작나무를 세우고 연기자를 객석에서 등장시키는 등 작은 무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에 연기자의 섬세한 움직임을 통해 극중 인물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박종기와 김계선이 처음 만나 대금으로 벌이는 격돌을 위트 있는 씨름으로 시각화한 ‘용호상박’은 그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다. 그가 전형적인 연출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장면이다. 또한 그는 연기와 춤에 익숙하지 않는 소리꾼 안이호와 정윤형, 여창가객 하윤주로부터 감성 연기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100%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더라도 짧은 시간 속에서 최대한 노력한 흔적이 전해진다.

정영두 “안이호, 정윤형, 하윤주 세 분과 예술가로 살아가는 삶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들과 극중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제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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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적로>

일정 : 2017.11.03(금) ~ 2017.11.24(금)

장소 : 서울돈화문국악당

시간 : 화·목·금 19시 30분 / 수 14시, 19시 30분 / 토 14시, 18시 / 일 15시

티켓 : 2만원

문의 : 02-3210-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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