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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장르, 어떻게 선택하세요? 세종시즌제 장르교집합 관객 심층 인터뷰

새로운 장르, 어떻게 선택하세요?
세종시즌제 장르교집합 관객 심층 인터뷰

글. 김선영(GROUND FLOOR × 콘텐츠 프로듀서, 전 월간 〈객석〉 기자) ㅣ 사진. 곽은진

공연예술 범주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소비하는 관객은 최근 눈에 띄는 현상이다. 관객이 어떤 선호에 따라, 장르 너머의 공연을 선택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공연예술계에서 소비자(관객)는 어떤 이유로 공연과 장르를 선택하고 움직이는지,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기호와 취향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과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심층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2017 2018 세종 시즌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슨은 순수예술뿐 아니라 대중문화까지 모두 애호하고 소비하는 이들을 ‘옴니보어(잡식동물)’로 규정했다. 이러한 경향이 처음에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발견됐지만, 이후 후속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중상층으로 확대됐다. 계층에 관계없이 옴니보어는 클래식 음악이나 오페라뿐 아니라 록이나 힙합 같은 장르까지 광범위하게 수용하는 형태를 보인다.
공연예술 범주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소비하는 관객은 최근 눈에 띄는 현상이다. 새로운 관객 유치가 쉽지 않은 현 공연예술계에서 장르 간 관객 이동이나 장르 확대를 염두에 둔 마케팅 전략은 관계자에게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때문에 관객이 어떤 선호에 따라, 장르 너머의 공연을 선택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와 관련해 공연예술정보 통합관리시스템인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Korea Performing Arts Box Office Information System)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관객이 내놓는 방대한 데이터 수집을 통해 정성, 정량 분석이 가능한 성숙기에 접어들게 된다면 관계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연예술 생태계 조성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향한 작은 발걸음으로, 세종문화회관과 예술경영지원센터은 공연예술계에서 관객은 어떤 이유로 공연과 장르를 선택하고 움직이는지,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기호와 취향은 무엇인지를 데이터를 기초로 살펴보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좀 더 세분화시키는 작업을 가졌다.
먼저 2016-17 세종시즌제 회원 중 두 종류 이상의 장르 공연을 관람한 관객(장르 교집합 관객)의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범위는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를 통해 세종시즌제 패키지를 구입한 관객으로 한정했으며, 장르는 뮤지컬, 콘서트, 연극, 가족_아동, 오페라, 국악, (한국)무용, 클래식(교향악, 실내악, 독주), 발레, 합창으로 살펴보았다. 두 종류 이상의 장르 각각에서 개별 공연을 2건 이상 관람한 관객은 총 200명(패키지 구매자의 약 10%)으로, 이들이 선택한 교집합 장르는 클래식&오페라, 뮤지컬-오페라가 각각 44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중 공동 1위를 차지한 교집합 장르 중 클래식-오페라를 ‘클래식 음악’이라는 카테고리로 흡수, 포함될 수 있는 것을 감안해 뮤지컬-오페라 장르 교집합 관객에 초점을 두고 이들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공연사적으로 19세기 말 뮤지컬의 태동에는 오페라타 영향이 컸고,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미권에선 오페라-뮤지컬 간 작곡가, 가수(배우)의 교환이 종종 이뤄지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지난 2015년 뮤지컬 〈팬텀〉에 소프라노 임선혜, 김순영이 출연하며 이슈를 모았고, 같은 해 서울시오페라단이 마티네 공연으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축약 버전을 선보인 바 있다. 그간 일부 갈라 콘서트에서 오페라 아리아와 뮤지컬 넘버가 한 무대에서 불려지기도 했지만, ‘공연’으로서 장르 간 교차가 활발하다고 보기는 아직 힘든 수준이다.
때문에 ‘음악+스토리텔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지만 기간, 빈도, 방식 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오페라와 뮤지컬 장르를 모두 관람하는 관객을 만나, 하나의 장르에서 시작해 다른 장르로 관람을 확대하게 된 계기와 그들이 체감하는 현장 분위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사진 : 이동원

지난 10월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2016-17 세종시즌 회원제 그룹 인터뷰가 이뤄졌다. 참석한 이동원, 정성진, 이명은 회원의 연간 공연 관람 편수는 최소 열 편 내외부터 최대 이백 편까지 다양했지만, 세종시즌제를 중심으로 뮤지컬과 오페라 장르 내 각각의 공연을 2건 이상 관람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각자 처음 경험한 공연 장르는 달랐지만, ‘음악+스토리텔링’ 공연을 좋아하는 공통된 성향을 갖고 있었고, 때문에 오페라-뮤지컬 간 장르 전환도 어렵지 않게 이뤄진 편이었다.

이동원 “전반적으로 음악 장르는 거의 좋아해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크게 가리지 않는데, 오페라나 뮤지컬은 서사 덕분에 감정이입하기 편해서 특히 선호하는 공연 장르예요. 그 중 뮤지컬은 멜로디가 귀에 익숙한 느낌이고, 쉬운 스토리 때문에 부담 없이 보는 편이에요. 반면 오페라는 왠지 외모를 꾸며서 가야할 것 같고, 동행인과 일상 속 이벤트로 본다는 느낌이 크죠. 때문인지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고, 특별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오페라를 좀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진 : 정성진

정성진 “오페라를 선호하지만, 더 많이 보는 건 뮤지컬이에요. 오페라 자체가 공연 횟수가 많지 않고, 공연 기간도 짧아 쉽게 접하기 힘들거든요. 사전에 알아야 하는 정보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죠. 반면 뮤지컬은 대극장부터 소극장까지 규모도 다양하고 공연도 자주 열리잖아요. 사전지식 없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서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집 아이들이 각각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인데 아동극 상당수가 음악극이라 더 익숙하게 느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명은 “시작은 뮤지컬이었어요. 이후에 연극, 창극, 오페라로 장르를 넓혀가게 됐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 두루 보는 편이에요. 현대무용은 열 번 정도 공연을 봤는데, 안무가의 감성과 닿지 않으면 작품 이해가 힘들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해외 유명 안무가 작품만 골라 보는 편이고, 오히려 발레를 선호하게 되더군요. 어쨌든 스토리와 노래가 있는 공연이면 장르 불문하고 좋아하다 보니, 한 달에 스무 편정도 공연을 보고 있어요.”

여러 장르의 공연을 넘나드는 관객의 행동을 ‘전환행동’으로 명명하고, 클래식 음악 관객과 발레 관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 관객은 발레에 비해 대중음악을 듣다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비율이 높고, 발레 관객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다가 발레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다. 취향 형성 후 선호 장르에 대해서는 클래식 음악 관객은 오페라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고, 발레 관객 중에는 클래식 음악과 현대무용 비율이 높았다. 각 장르마다 헤비유저일수록 선호하는 장르의 속성과 유사한 공연으로 전환하였고, 라이트유저는 대중적인 공연으로의 전환율이 높았다. 또한 공연의 소비량이 많을수록 다중 카테고리 소비자로 전향할 가능성이 높았다. (참고: 안성아, 『공연 장르 간 전환행동 연구』, 한국문화경제학회 〈문화경제연구〉 제15권 제3호, 2012)
또한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 배우나 창작진, 제작진이 교차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 배우를 쫓아, 또는 저 연출가를 따라 새로운 장르를 탐험하는 장르 교집합 관객의 특징도 이번 좌담 가운데 발견됐다. 관객이 특정 예술가를 쫓아 다양한 장르 간 이동을 감행(?)하는 경우는 연극-뮤지컬 장르 사이를 오가는 배우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때문에 표면적으로 ‘예술가’를 쫓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현상을 소비자의 ‘기호’로 치환해 분석해 볼 필요도 있다.
일정기간 동안 연간 공연 전체를 일괄 공개하는 동시에, 묶음으로 구매할 경우 큰 폭의 할인율을 적용해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시즌제 패키지’는 관객과 극장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은 미리 계획을 세워, 연간 공연 일정과 자신의 스케줄을 맞출 수 있고, 극장은 공연에 대한 사전 홍보 및 마케팅을 통해 일정한 관객을 선점하게 된다. 특히 관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공연이 한눈에 보기 좋게 진열된 매장에서,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는 환경까지 조성될 때, 관객은 자신이 미처 몰랐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품을 그리 어렵지 않게 장바구니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사진 : 이명은

이동원 “오페라 공연 티켓이 워낙 비싸서 시즌 패키지로 30~40% 할인만 받아도 다른 장르 공연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구입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게다가 세종시즌 패키지가 생기면서 저렴한 가격에 1년 치 공연 스케줄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연 스케줄에 제 일정을 맞추게 된다고 할까요. 저는 ‘내맘대로 패키지’를 선택했는데 덕분에 발레나 연극 공연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어요. 시즌 패키지 구성 중에 외부 단체와 공동제작하거나 대관인 공연들도 일부 포함된 것도 좋았습니다.”

정성진 “시즌제 패키지는 제 이름 앞으로 1명분만 구입해요. 누구랑 갈지는 사실 공연 임박해서 정해지는 경우가 많으니, 개막 즈음에 동반자 티켓을 구매하게 되죠. 작년에는 세종에서 ‘내맘대로 패키지’를 구입하면 프리미엄 회원 자격을 줘서, 티켓 추가 구입 시 할인혜택이 있었는데, 올해 제가 구입한 패키지는 동반자 할인 적용이 안 되다보니 프리미엄 회원에 별도 가입을 해야 돼서 좀 아쉬웠어요.”

이명은 “각 공연장 별 시즌제 패키지 티켓으로 공연을 관람해요. 대구오페라페스티벌이나 의정부음악극축제 같은 경우에도 패키지 티켓을 구매하죠. 그래서 극장마다 시즌 패키지를 공개할 때면 조기예매와 시즌 패키지 티켓 중 어느 쪽이 합리적일지 늘 고민하면서 모든 예매 사이트를 다 살펴봐요. 이번 시즌 세종에선 서울시극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오페라단 각각의 패키지 티켓을 구입했어요. 세종은 공연이 임박해도, 수수료 없이 예매했던 좌석변경이 가능한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세종시즌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많은 전속단체(9개)를 보유한 세종문화회관은 지난 2016-17 처음 시즌제를 도입해 계절별, 타깃별(어린이, 청소년, 문화소외계층), 공연장별(대극장, 체임버홀, M씨어터), 테마 스페셜(셰익스피어, 서울, 세종), 예술단 창작 초연 등 다양한 패키지를 내놓았다.
LG아트센터는 2000년 극장 개관과 함께 국내에 처음 패키지 티켓을 선보였고, 이듬해 시즌권 판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시즌제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3개의 전속단체를 보유한 국립극장은 2012년부터 시즌제를 시작했다. 지난 2016-17 시즌에는 ‘프리 패키지’ 외에 재연, 초연작을 올리는 특정 연출가에 대한 ‘집중 공략 패키지’, 각 소속단체별 ‘일편단심 패키지’ 등을 선보였다.
각 극장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연간 공연들을 특정한 때에, 일정기간 동안 동시 노출하는 프로세스 가운데 ‘시즌제 패키지’를 실시하고 있다. 패키지 타입을 나름 유형화해보면 1) 단일 예술단체 중심 구성 및 2) 다장르(단체)/특정 테마에 따른 ‘공급자 중심’ 구성, 3) 일정 수량의 공연을 자유롭게 구성하는 ‘공급자-소비자 합의형’이 국내에 시즌제가 도입된 이래 10여년 사이에 보이는 양상이다. 한편 최근 5년 사이 제작극장들이 시즌제를 도입하면서 4) 축적된 협업을 통해 특정 예술가를 내세우는 등 ‘관객 기호’를 감안한 구성까지 극장 특성과 레퍼토리에 따라 시즌 패키지가 다양하게 확대되고 진화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세종시즌

“탄탄한 시즌 구매층이 있으면 극장들은 예술적 실험을 과감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관객은 개별공연의 좋고 나쁨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공연을 경험함으로서 작품을 보는 분별력과 시야를 갖게 된다”
– 필립 코틀러, 조앤 셰프 〈전석매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소비하는, 장르 교집합 관객의 탄생은 ‘소비량이 많을수록 다른 범주로 관심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고, 적극적인 소비자일수록 다양성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비자 행동에 대한 연구에 대한 방증인 동시에, 지난 10여년 사이 여러 극장과 예술단체들이 만들어온 시즌제 가운데 빚어진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기존 소비자를 관리하는 것보다 새로운 소비자를 유치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일반 마케팅론은 현 공연예술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입장벽을 높게 느끼는 소비자를 위해 문턱을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빈번한 공연 소비 가운데 관심을 넓히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관객 대상의 마케팅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장르 교집합 관객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이 공연 관계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장르로 경계를 넓혀가는 관객에겐 같은 비용으로, 또는 보다 합리적인 금액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연을 선택하는 기회가 마련된다. 이 가운데 쉽게 소비되는 트렌드로서의 공연이 아닌 안정적이고 종합적인 공연 계획과 경험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다 다양한 예술장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은 하나의 개별 장르에서 얻는 그것에 비해 다면적이고 입체적이다.

이러한 유익을 위해선, 공연관계자들의 보다 세심한 고민과 노력이 요구된다. 장르 교집합 관객의 취향이나 기호를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군을 제공하는 과정 가운데, 이들 관객이 장벽 너머의 예비 관객까지 자연스럽게 동반할 수 있는 마케팅 장치가 마련된다면 기존 고객의 소비 영역 확대뿐 아니라 신규 고객 창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관객과 관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개별 공연을 소개하는 단순 데이터 이상으로, 빅데이터에 기초한 관객 ‘기호(취향)’를 파악할 수 있는 분석된 정보가 공연관계자를 위해 열려있을 때 가능하다. 때문에 2014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공연예술전산망이 공연예술정보 통합관리시스템으로서 공연정보, 박스오피스 집계, 통계정보 등 데이터 수집, 관리 이상으로 관계자들이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정보 또한 제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