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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서도소리가 들려와요

서울돈화문국악당 기획공연 〈국악의 맛〉 유지숙 명창 인터뷰

우리들의 서도소리가 들려와요

서울돈화문국악당 기획공연 〈국악의 맛〉 유지숙 명창 인터뷰

글. 장혜선(객원기자)

이 땅에서 서도소리를 한다는 것은 어떠한 마음일까?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의 전수조교 유지숙은 서도소리꾼의 삶이 참으로 외롭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더욱 다정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는 그녀의 소리 인생을 되돌아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의 전수조교 유지숙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서도소리를 흥얼거리며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고향이 강화도 양사면이에요. 아버지는 강화도 분이시고, 어머니는 황해도 분이시죠. 황해도와 강화도는 아주 가까워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서도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며 노래를 부르곤 하셨어요. 당시에는 그 소리가 서도소리인 줄 몰랐는데, 구성진 소리가 마음에 와닿았죠. 친가가 음악성이 좋은 편이었어요. 아버지는 삼 형제 중 첫째였는데 호적을 잘 부셨어요. 둘째아버지는 장구를 치셨고, 셋째아버지는 소리를 하셨죠. 동네에서 배뱅이굿을 하면 오빠들이 비슷하게 따라 하곤 했어요. 모두 끼가 있었지만, 예술가를 키울 만한 집안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본격적인 소리 공부는 20대 중반부터 시작하셨어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서초동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바로 앞 상가에 ‘민요·단소’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보이더라고요. 일을 하다 보니 어린 시절에 듣던 서도소리가 그리워서 그곳을 찾아갔어요. 다짜고짜 서도민요를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 김정연 선생님과 오복녀 선생님이 보유자셨는데, 오복녀 선생님을 소개받았어요. 살다가 어느 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된다고 하잖아요. 오복녀 선생님과의 만남은 매우 운명적이었죠.

회사에 꽃꽂이를 배운다고 하고 틈틈이 소리를 배우러 다니셨죠.

실제로 저녁에 꽃꽂이를 배우기도 했어요(웃음). 오복녀 선생님 댁이 아파트여서 저녁에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어요. 낮에 잠깐 시간을 내서 다녀와야 했죠. 회사에 소리를 배우러 간다고 하면 이해 못 할까 봐 무난하게 꽃꽂이를 배우겠다고 한 거예요. 회사는 서초동이고 선생님 댁은 도곡동이었는데, 당시 버스가 한 라인이어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어요. 29살이 되던 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소리의 세계에 뛰어들었죠. 매일 선생님 댁에 갔어요. 오전 10시 반쯤 가서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점심 먹고, 가끔 청소도 하곤 했죠. 그러면 선생님이 “이제 공부할까?” 하셨어요. 3년을 그렇게 지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공부가 제 인생에 전부였던 것 같네요.

오복녀 선생님은 어떠한 분으로 회고하나요?

다정다감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하지만 거짓이 없으셨죠. 소박한 예술인의 삶을 사신 분이에요. 공연비를 받으면 돈을 아껴서 한복을 지어 입고, 먹는 것도 과하지 않으셨어요. 모든 것을 가진 것에서 최대한 해결하셨습니다. 오복녀 선생님에게 가장 본받고 싶은 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항상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셨어요. 상대가 거짓말을 하면 나 역시 거짓말을 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거짓된 관계가 되기 십상인데, 선생님이 솔직하시니 저도 그럴 수 있었어요.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의 전수조교 유지숙

오복녀 선생님께서 소리에 대한 칭찬은 하셨나요?

처음 만났을 때 “목이 좋구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웃음).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우는 모든 과정이 좋았습니다. 서도소리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중간중간만 알고 있었거든요. 소리를 배우니 제가 알던 부분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의 곡이 되어가는 과정이 즐거웠죠. 여태껏 단 한 번도 소리를 관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어떠한 스승이 되고 싶은가요?

저는 극과 극의 성격을 갖고 있어요. 때로는 자상하고, 때로는 남성적이죠.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 진솔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써요.

일제강점기만 해도 서도 명창이 평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와서 공연할 만큼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 분단 이후에는 서도소리의 맥이 간신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남도소리나 경기소리에 비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외로운 적이 많았습니다. 전라도에서 ‘진도아리랑’이나 ‘육자배기’를 하면 사람들이 다 좋아해요. 경기도에서 경기소리를 하면 반응이 뜨겁죠. 지역 정서가 잘 맞으니까요. 하지만 ‘난봉가’나 ‘수심가’ 같은 북한의 소리를 하면 다들 어색해합니다. 무엇보다 서도소리는 본질적으로 느리고 구슬픈데, 요즘처럼 빠른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반면에 황해도에서 ‘산염불’을 하면 다들 너무 좋아해요. 관객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서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서도소리를 즐겁게 전달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낸 음반이 〈경서도민요〉예요. 경기민요에 서도민요를 끼워 넣는 시도까지 해봤습니다. 사람들이 서도소리인 줄 모르지만 듣고 나서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거죠.

현재 북한과 남한의 서도소리가 어떻게 다르나요?

발성이 가장 달라요. 남한에선 말하듯이 소리를 내고, 북한에선 곱고 높은 청을 내요. 창법은 도드라지게 다르지만, 시김새는 똑같습니다.

2015년에 프랑스 월드뮤직 전문 음반사인 오코라 라디오 프랑스(Ocora Radio France)에서 국내에서도 조명되기 힘들었던 북한의 전통 민요를 새롭게 복원해 〈북한의 민요〉 음반을 내셨죠.

2014년 프랑스 상상축제(Festival de L’Imaginaire)의 개막 공연에서 서도소리를 불렀어요. 그 공연을 본 프로듀서가 북한의 소리는 잘 모르지만,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 든다고 음반을 내보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통속적인 곡이 아니라 토속적인 민요들을 담고 싶었어요. 토속민요 전문가인 MBC 라디오 최상일 프로듀서와 함께 의논해서 곡을 선별했어요. 저는 이 음반을 소개할 때면 옷을 다 벗고 노래한 것 같다고 말해요(웃음). 음반사 측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음하길 원해서 믹싱할 때 효과를 거의 주지 않았어요.

그동안 〈토리: 서도명창 유지숙의 북녘소리〉(2007)나 〈유지숙의 기원과 덕담소리〉(2014)와 같은 음반을 통해서 전수의 맥이 끊어진 노래를 지속적으로 복원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소리가 정말 많아요. 그 좋은 소리를 꺼내서 다듬지 않으면 전승이 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다듬은 소리가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들어놓으면, 다음 세대의 소리꾼들이 더욱 매만지지 않을까요? 모두 새롭게 정리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매우 힘들지만, 보람이 큽니다.

북한의 전통 연희 ‘향두계놀이’를 복원해 2011년 평안도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는데 기여했고, 2013년 제5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셨죠. 당시 지원이 어려워서 작품을 올리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향두계놀이는 서도의 연희입니다. 가을 추수까지 농사하는 과정을 소리와 연희로 엮은 건데, 구성이 아주 잘 짜여 있어요. 김정연 선생님과 오복녀 선생님이 살아 계셨을 때 공연되다가 잠시 맥이 끊겼죠. 저는 향두계놀이가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오다가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됐습니다. 향두계놀이를 잘 전승해야겠다는 소명이 생겼어요. 제5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나갔는데, 그때는 연극식으로 공연해서 꼴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전했는데, 비용 지원이 천만 원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 비용이면 단원들이 며칠만 식사하면 끝나거든요. 그래서 기업마다 찾아가서 제가 몇 년에 거쳐서 갚겠다고 말하고 지원금을 모았어요. 책임감이 느껴져서 밤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결과적으로 대통령상을 받아서 다행이었죠. 제 생애 그때만큼 간절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열리는 〈서도소리 다정다감〉(6월 24일)에는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자연 음향을 사용하는 공연장이잖아요. 그래서 서도소리의 진수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자들은 유명한 서도소리를 부르고, 저는 잘 안 알려진 소리들을 부를 예정입니다. 제자들의 실력이 뛰어나요. 이번 공연을 보신 분들은 서도소리의 장래가 매우 밝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무엇인가요?

일단 음반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요. 사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요(웃음). 말이 앞서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멈추진 않을 거예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아주 많습니다.

[국악의 맛 : 민요] 서도소리 다정다감

[국악의 맛 : 민요] 서도소리 다정다감

일정 : 2017.06.24 (토)

장소 : 서울돈화문국악당

시간 : 17시

티켓 : 2만원

문의 : 02-3210-7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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