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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20년의 여정

확고한 정체성을 위한 움직임

서울시극단, 20년의 여정

확고한 정체성을 위한 움직임

writer 김미혜(연극평론가, 한양대 명예교수)

서울시극단은 공립극단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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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익

추문패거리

추문패거리

서울시(립)극단은 1997년 1월에 창단되어 2017년 20주년을 맞이했다. 서울시극단(이하 시극단) 창단은 뜻있는 많은 연극인의 열망에 서울시가 함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당시 조순 서울시장은 “1인당 시민소득 1만 불 시대를 구가하며 세계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서울시이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민들의 문화 향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너무도 부족함이 많은 도시가 서울”임을 피력했다. 조 서울시장의 말을 통해 시극단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세계 도시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서울 시민을 위한 대표적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의 산하 9개 예술단체 중 하나가 시극단이다. 20년 동안 모두 6명의 단장이 시극단을 거쳐 갔고, 2015년 6월, 연출가 김광보가 7대 단장으로 취임해 2017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모든 단장이 ‘공공성, 예술성,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자 애쓴 것은 분명하다.

헨리 4세

헨리 4세

고(故) 김의경 초대 단장은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입센, 체호프, 브레히트, 아서 밀러 등 서양의 고전과 현대극 그리고 창작극까지 고른 레퍼토리를 선정했으며 특히 기획 공연은 방송국과 협업하여 ‘MBC 가족뮤지컬’로 꾸렸다. 또한, 서울 시민들의 계도를 위해 정기 공연별 무크지 <시민연극(市民演劇)>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작가와 작품, 공연사를 비롯해 작품의 역사적, 철학적 배경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글은 연극 전공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정도였고, 유럽 공공 극장들의 유익한 플레이빌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2대 이태주 단장은 영문학자답게 영어권 작품에 중점을 두었으나 에스파냐의 시인 로르카, 스위스 작가 뒤렌마트와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도 무대화했다. 특기 사항이라면 셰익스피어의 대형 사극 <헨리 4세 1부와 2부-왕자와 폴스타프>를 한국 관객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점이라 하겠다.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소규모의 민간 극단에서는 꿈꿀 수 없는 작품의 무대화였기 때문에 시극단의 본령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연출을 맡은 김광보는 이 작품이 “정치적인 주제와 좀 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주제가 절묘하게 한데 어우러져 여러 형태의 인간형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간파했으나 왕자 헨리와 함께 어울리다 그의 왕위 등극과 함께 스러지는 “디오니소스적인 인간 폴스타프”에도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혔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 중 하나인 폴스타프를 한국 무대에서 보게 된 귀한 공연이었다. 이 단장 때 창작극은 화가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다룬 <길 떠나는 가족>(김의경 작/기국서 연출) 한 편밖에 없었다.

봉선화

봉선화

3대 신일수 단장 때는 소포클레스, 몰리에르, 까를로 골도니, 마테를링크 등 서양 여러 나라의 작품들이 무대화되었는데 영국 작가 알란 에이크본의 <막판에 뜨는 사나이>(박광정 연출)와 브레히트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원제 <갈릴레이의 생애>, 이기도 연출)는 한국 초연이었다. 2005년 한일수교 40주년을 기념한 ‘한일 우정의 해’에 즈음하여 한국과 일본의 공동작(차범석·시나가와 요시마사)인 <침묵의 해협>, 세종문화회관 개관 30주년과 한국 신연극 100주년을 기념한 <순교자> 등을 의미 있는 프로덕션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신 단장 때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을 비우고 서대문구 문화체육회관으로 옮겨야 했고, 대학로에 있는 공연장들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무 크지의 발행이 중단되었다.
앞선 단장들도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4대 김석만 단장은 시극단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신선한 기획들을 주도했다. 그간 ‘고전명작 시리즈’를 ‘세계현대연극 시리즈’로 바꾸어 “해마다 한 편씩 당대의 문제작을 여러 문화권에서 선택”하고, 겨울 정기 공연으로 ‘어린이 셰익스피어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

그 결과 그동안 익숙했던 영어권과 유럽의 작품에서 벗어나 한국 최초로 중동의 작품인 <왕은 왕이다>가 소개되었다. 이 작품은 에스파냐 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최신작 <다윈의 거북이>와 더불어 연극계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페터 바이스의 <마라, 사드> 역시 그간 규모를 축소한 소극장 공연과는 달리 작품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중극장 버전으로 거듭났다. 이 공연을 계기로 무크지 발행이 부활되었고, 극 관람과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특강 시리즈도 관객에게 제공되었다. 특히 서울 혹은 서울의 현대사를 탐색한 기획물인 <7인의 기억>과 <순우삼촌>은 결과에 상관없이 야심에 찬, 시극단의 정체성을 극대화하고자 한 공연들이었다.
5대 김철리 단장 때에 주목할 사항은 중·고등학생들을 공연에 익숙하게 하려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을 번안한 <쥐덫>(김종석 연출)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신호 연출), <로미오와 줄리엣>(양정웅 연출)을 겨울방학에 기획 공연한 점이었다. 특히 전자의 두 공연은 대학로의 공간에서 이루어져 학생들의 접근성을 최대화했다. 미래의 관객 개발을 위해 청소년 들을 연극에 익숙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므로 의미 있었다. 김 단장은 영국의 18세기 작품인 리처드 B. 셰리든의 <추문 패거리>를 한국 초연함 으로써 주로 영어권 작품만 무대화하는 편향성을 보였다. 이 편향성 때문인지 창작극으로는 <달빛 속으로 가다>(장성희 작) 한 편만 무대화되었다. 이때 부터 무크지 <시민연극>의 발행은 다시 중단되어 공연별 프로그램만 나오고 있다.

마라사드

마라사드

여관집 여주인

여관집 여주인

6대 김혜련 단장은 김철리 단장과는 달리 모두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극 내지 각색작을 무대화했다. 괄목할 사항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봉선화>가 한국에서의 앙코르, 뉴욕, LA, 시카고 등지에서 공연된 점이다. 외국 작품으로는 극단 실험극장과 함께 제작한 <고곤의 선물>만이 기획 공연되었다.
현재 7대 김광보 단장은 모든 정기 공연은 직접 연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며, “20년이 다 돼가는 극단이지만 여전히 서울시극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약하”므로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정기 공연으로 창작극 <나는 형제다>, <함익>과 셰익스피어의 <헨리4세-왕자와 폴스타프>를 약속대로 직접 연출했다. 현재 시극단은 “봄에는 우리 시대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고전을 무대화하고 가을에는 동시대의 삶을 이야기하는 창작극을, 겨울에는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극을 무대화”하며 “한국연 극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신진 예술인 발굴 프로그램인 ‘창작플랫폼’ 운영,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시민연극교실’을 통해 공립극단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구조상 어차피 몸집을 불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러한 노력을 계속함으로써 시극단은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시민의 연극, 예술적인 연극, 한국적인 연극을 지향’하는 공공극단의 몫을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