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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 그리고 ‘안중근’을 품고 사는 도시

뮤지컬과 여행 이야기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안중근’을 품고 사는 도시

뮤지컬과 여행 이야기

writer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뮤지컬평론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하얼빈을 마주하게 된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 속에서도 하얼빈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뮤지컬 <영웅>을 통해서다.
알고 보면 더욱 유익한 뮤지컬과 여행 이야기, 지금부터 하얼빈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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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 공연 장면

서울에서 2시간여 여정 끝에 비행기가 도착할 즈음, 창밖을 보면 광활한 대지가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진 도시를 만나게 된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주도인 하얼빈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광활한 대지 위를 일제에 항거하며 민족 해방과 독립을 위해 뛰어다녔을 위대한 선조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뭉클한 감동이 밀려든다.
조선족이 많은, 그래서 우리에겐 왠지 더 친근한 이미지의 이 도시는 유네스코가 뽑은 ‘음악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격년제로 열리는 한여름의 음악축제는 수많은 관광객과 방문객을 유치하는 이 도시 최고의 축제 중 하나로 한겨울의 ‘빙등제’와 더불어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쏟아내는 재미난 행사다.
호방한 대륙의 기질은 수백 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야외에 설치하고 동시에 연주하는 호화로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세계 유수의 저명한 음악가들과 음악과 관련된 공연들이 즐비하게 이어지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연교차가 심해 한겨울은 얼음마저도 플라스틱처럼 보이게 하고, 길거리 노점상들이 아이스크림을 내놓고 파는 진풍경을 만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여름은 쾌적한 날씨와 풍광으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도 베이징이나 남방의 상하이, 광저우 같은 광둥성의 도시들, 저장성의 항저우와도 차별되는 묘한 매력에 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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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 공연 장면

러시아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도 이 도시의 모습을 완성해내는 재미난 요소다. 건물이나 거리 풍경 같은 도시의 겉모습도 러시아풍의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노란 머리 하얀 피부의 러시아 미녀들이 활보하는 길거리 모습은 그야말로 이색적이고 유별나다. 우리의 한강처럼 하얼빈에는 송화 강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덕분에 강가 풍경도 즐기기 좋다. 1898년 만들어졌다는 중앙대가(中央大街, 중국 발음으로는 ‘종양따지에’쯤 된다)는 마치 유럽 도시를 연상케 한다. 바로크나 비잔틴 양식의 건물도 만날 수 있고, 100여 년 역사의 아이스크림 가게도 들를 수 있다. 거의 1.3km에 달하는 거리인 중앙대가는 정방형의 돌을 수직으로 세워 만든 돌길로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이고 고풍스러운 경치를 재현해낸다. 울퉁불퉁한 돌바닥 거리 모습은 마치 수없이 많은 사연을 박아놓은 듯 고색창연하다. 원래 하얼빈이라는 이름은 만주족(族)의 말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실 19세기 무렵까지는 불과 몇 채의 어민 가구가 사는 지역이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역사 속 하얼빈의 변화는 제정 러시아 둥칭 철도의 철도기지가 된 것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철도의 설립은 물류와 사람들의 이동을 가져오며 상업 요지와 교통 중심지로서 하얼빈의 역할을 극대화시켰다. 지금도 하얼빈에서 기차를 타면 러시아를 오갈 수 있다.

하얼빈 대극원 전경

하얼빈 대극원 전경

하얼빈 대극원 전경'

하얼빈 대극원 전경

우리의 창작 뮤지컬 속에서도 하얼빈을 만날 수 있다. 안중근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이다. 이야기의 시·공간적 배경이 바로 이 도시다. 덕분에 극 안에서 스치듯 지나는 장소 하나하나가 직접 방문해보면 더욱 생동감 있게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야말로 ‘알고 보면 더 만끽할 수 있는’ 것이 뮤지컬의 묘미인 셈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하얼빈역의 안중근 박물관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가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이곳은 안중근 의사가 직접 쓴 서체의 편지나 사진 등이 전시돼 있는 역사적 장소다. 흥미로운 것은 박물관 안에서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플랫폼 바닥의 이미지들인데, 바로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서 있었던 장소를 알려주는 표식들이다. 뮤지컬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총성이 7발 흘러나오는데, 처음 4발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나머지 세 발은 혹시 오인이 있거나 실수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이토 주변의 그로 보이는 인물에게 날린 총탄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에 사용했던 총은 사실 8발 탄착이 가능한 벨기에제 브라우닝 M900 권총이었는데, 덕분에 발사하지 않은 나머지 한 발에 대한 이야기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마지막 한 발은 의거 후 자살을 위한 배려였다는 추측도 있지만, 법정에서 안중근 의사는 떳떳하게 전쟁의 장수로 적군의 우두머리를 저격했음을 강변하며 자결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후문도 있다.

하얼빈 대극원 대공연장
하얼빈 대극원 대공연장

하얼빈 대극원 대공연장

달려오는 기차에서 내린 이토를 향해 권총을 쏘는 뮤지컬 속 이미지는 이곳을 찾아보면 더욱 눈가에 선명히 떠오르는 모습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랫말처럼,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에서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고 하늘에 맹세’했던 선열의 애국심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향반 지주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근대 신문물을 수용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유년시절부터 개화된 사고를 지니며 자랐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전에는 교육 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력도 있다. 1909년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1살이었다. 안타깝게도 의사의 무덤은 아직 발견조차 되지 못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생의 시신을 일제는 연골을 제거해 무릎을 꿇린 채 관에 담아 후세 사람들이 찾아볼 수 없게 훼손시키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버렸다는 뒷이야기만 무성하다. 우경화를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의 한 관계자는 몇 해 전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로 폄하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세월은 흐르고 선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나라의 주권을 되찾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프고 안타깝다.
하얼빈을 찾으면 꼭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하얼빈 대극원이다.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매드 아키텍츠(MAD Architects)의 작품이다. 마흔한 살의 중국 건축가 마얀송이 설립한 회사로,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추구하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인 ‘샨수이 시티’의 건축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눈 덮인 하얼빈의 겨울 산하가 모티브가 됐다는데, 공연장이기보다 우주선 같은 외형과 나무를 활용한 계단 및 5층 높이의 내부 건축 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말 그대로 획기적이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객석 디자인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일부러라도 들르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이색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

하얼빈 대극원에서는 우리 뮤지컬 <투란도트>가 막을 올린 적이 있다. <영웅>도 하얼빈에서 공연이 됐지만, 대극원이 완성되기 이전의 일이라 아쉽게도 이 무대에선 상연된 적이 아직 없다. 언젠가 안중근의 이야기를 하얼빈 대극원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생각만으로도 절로 가슴 벅차오르고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