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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역사상 최초 레코딩 이야기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역사상 최초 레코딩 이야기

writer 이상민(음반칼럼니스트)

가을 색이 점점 짙어지는 지금, ‘첼로의 성자’로 불리던 위대한 휴머니스트가 그의 인생을 모두 담아 내놓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마음을 열고 한 번 들어보세요.

파블로 카잘스

가끔 음악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작품들은 흔히 ‘성서’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피아노의 구약성서’하면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가리키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피아노의 신약성서’로 일컬어집니다. 또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바이올린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특별한 곡이죠. 물론 첼로 작품 중에도 ‘구약 성서’에 비견되는 걸출한 작품이 존재합니다. 6개의 작은 곡들이 모여 큰 한 곡을 이루고, 이런 곡들이 모두 모여 6곡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입니다 (‘구약성서’에 비견되는 음악들은 모두 바흐의 작품이네요. 바흐가 괜히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게 아닙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아시다시피 바흐가 ‘쾨텐 시대’에 썼으리라 짐작되는 작품입니다 (1717년~1723년경).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쯤에 쓰인 곡이지요. 바흐가 쓴 자필 악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그의 부인인 안나 막달레나가 필사한 악보만 전해집니다. 그나마도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묻혀 있던 이 곡은 파블로 카잘스라는 ‘첼로의 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1889년 당시 첼로를 공부하던 카탈루냐 출신의 13살 소년 카잘스는 바르셀로나의 음악원에 다니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카페에서 첼로 연주를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마침내 성인용 풀사이즈 첼로를 얻게 된 카잘스는 기쁜 마음에, 이에 걸맞은 제대로 된 악보를 구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의 한 부둣가 서점에 들르게 되죠. 바로 이 고서점에서 카잘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발견하게 됩니다. 170여년 간 잠자고 있던 ‘첼로의 구약성서’가 세상에 깨어나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파블로 카잘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악보에 그 어떤 음악적 지시나 도움말도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는 온전히 아티스트의 몫으로 남습니다. 소년 파블로 카잘스는 악보를 발견한 이후 12년간 이 곡의 해석과 연주에 매달려, 25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콘서트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성급한 공명심에 이끌려 서둘러 소개하기보다는, 바흐의 의도와 진의를 파악해 이 곡이 가진 위대함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었죠.
카잘스는 그 후에도 35년을 더 기다려, 무려 60세에 이르러서야 평생 단 한 번 전곡을 녹음합니다(1936년부터 1939까지 3년간에 걸쳐서 녹음). EMI 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발매됐던 이 앨범은 이후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최고 권위를 가진 명반으로, 그리고 최초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집 녹음’으로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죠 (지금은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나는 바람에 여러 음반사에서 카잘스의 복각한 음원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 녹음의 오리지널 음원은 현재 워너 클래식을 통해 발매되고 있습니다).

파블로 카잘스

카잘스는 음악가 이전에 뛰어난 인품의 휴머니스트였습니다. 그는 “음악가도 인간이기 때문에, 음악보다 삶에 대한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음악보다 늘 먼저 인간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또 조국 스페인이 프랑코 독재정권의 휘하에 들어가자 프랑스의 작은 도시 ‘프라드’로 망명하면서, 항의의 표시로 독재 정권이 스페인을 지배하는 한 연주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1939부터 10년간이나 자신의 존재 가치인 첼로 연주를 기꺼이 포기했던 진정한 휴머니스트였습니다. 그가 다시 연주를 시작한 건 1950년. 바흐가 세상을 떠난 지 20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페스티벌에서였는데, 당시 병원에 입원한 수많은 스페인 망명자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이후 1961년 자유와 평화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으며(이 실황은 소니 클래식에서 음반으로도 발매했습니다), 1963년에는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고, 1971년에는 ‘UN 평화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을 색이 점점 짙어지는 지금, ‘첼로의 성자’로 불리던 위대한 휴머니스트가 그의 인생을 모두 담아 내놓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마음을 열고 한 번 들어보세요. 첼로 한 대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들려주는 그의 연주는 때론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을 때 그 진정한 가치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답니다.

디누 리파티 - 마지막 리사이틀(The Besancon Piano Recital)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집
(Bach : Cello Suites No.1~6)

1번째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사장조
(Cello Suite No.1 In G Major BWV.1007)

2번째 :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라단조
(Cello Suite No.2 In D Minor BWV.1008)

3번째 :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다장조
(Cello Suite No.3 In C Major BWV.1009)

4번째 : 무반주 첼로 모음곡 4번 내림 마장조
(Cello Suite No.4 In E Flat Major BWV.1010)

5번째 :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다단조
(Cello Suite No.5 In C Minor BWV.1011)

6번째 : 무반주 첼로 모음곡 6번 라장조
(Cello Suite No.6 In D Major BWV.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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