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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은 다시 전통으로

헤닝 브록하우스의 <라 트라비아타 ‘The New Way’> 들여다보기

파격은 다시 전통으로

헤닝 브록하우스의 <라 트라비아타 ‘The New Way’> 들여다보기

writer 이용숙(음악평론가) / photo 한국오페라단 제공

헤닝 브록하우스가 연출한 오페라 <라 트라이바타>가 1992년 초연 당시 사용했던 무대와 의상, 소품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재현한다.
이번 공연의 부제는 ‘더 뉴 웨이(The New Way)’다. 이미 <라 트라비아타>를 관람했던 관객이라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파격적인 시도 속에 녹아든 전통적인 연출 방식은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도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 무대 1

자주 공연되는 유명 오페라일수록 끊임없이 새로운 콘셉트의 연출이 요구된다. 2016년 11월, 세종대극장에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생애 최초로 보러 오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워낙 유명하고 자주 공연되는 작품인 만큼 관객 중 대다수는 이미 이 오페라를 극장에서나 오페라 DVD로 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가창과 연주가 훌륭하다 해도 같은 내용의 작품을 비슷한 전통적 연출로 다시 보는 일은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기존의 일반적인 연출 콘셉트를 뒤집는 파격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파격은 음악을 무시한 연극적 실험이 아닌, 음악을 살리면서도 연극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담은 ‘의미 있는 파격’이어야 한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빌리 데커의 <라 트라비아타>’ 또는 ‘로버트 카슨의 <라 트라비아타>’ 등 연출가의 이름을 앞에 달게 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독일 연출가이자 무대디자이너 헤닝 브록하우스 역시 그런 연출가들 중 한 사람이다. 1992년 그가 무대미술가 요셉 스보보다와 함께 이탈리아 마체라타 페스티벌의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 무대를 위해 제작한 <라 트라비아타>가 ‘거울 트라비아타(Traviata of the Mirrors)’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꾸준히 재공연되었기 때문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 무대 2

무대미술 전문 계간지 <시노그래퍼(The Scenographer)>는 2014/2015 겨울호를 ‘브록하우스의 마이 씨어터(My Theatre)’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로버트 윌슨, 프랑코 제피렐리, 윌리엄 켄트리지, 로베르 르파주 같은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브록하우스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 사진은 이 계간지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여성의 신체를 그린 회화 작품들의 어지러운 콜라주가 바닥을 장식하고 있고, 45도 경사의 대형 거울로 그 바닥을 비춰 관객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면을 보여주면서 무대를 화려하게 채운다. 대형 거울을 사용하는 이런 방식은 오늘날 연극이나 오페라 무대에서 비교적 흔한 시도가 되었다. 2천 년대 들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마담 버터플라이>, 페사로 로시니 페스티벌의 <젤미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파르지팔>, 그리고 한국 초연으로 기록된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 역시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그래서 이제는 관객이 보지 못하는 숨겨진 면을 거울로 드러내는 무대 효과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러나 1992년도에 오페라 무대의 이런 시도는 상당히 신선하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공연 자체는 대체로 전통적인 연출 방식을 따르고 있어 이 작품을 처음 보는 관객도 무리 없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예술적 새로움과 대중적 재미의 결합 덕분에 이 프로덕션은 이탈리아 마체라타 초연 이후로 로마와 베로나, 일본 나고야, 미국 볼티모어, 스페인 발렌시아, 프랑스 툴롱, 중국 베이징,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등지에서 최근까지 꾸준히 재공연되었다. 초연 후 24년이 지났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에서도 초연 당시 무대와 의상, 소품 등을 그대로 사용한다.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베를린 폴크스뷔네, 베를리너 앙상블 등에서 하이너 뮐러, 루트 베르크하우스 같은 연출가와 함께한 브록하우스의 출발점은 이미 그의 성장 방향과 세계관을 짐작하게 한다. 1975년에 전설적인 연출가 조르조 스트렐러를 만나 밀라노에서 브레히트, 셰익스피어, 스트린드베리의 극을 함께 작업한 경력은 그의 연출 경향을 창의적인 방향으로 확정했을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 무대 3

1막 무대에서부터 브록하우스는 인물과 배경의 관능적 요소를 강조하며 비올레타의 직업이 평범한 여성이 아닌 코티잔(프랑스에서 상류계층의 남성과 계약을 맺고 그 남성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쾌락을 제공한 여성)임을 분명히 했다. 여러 <라 트라비아타> 프로덕션에서 비올레타가 마치 일반 부르주아 가정의 여성처럼 보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막 1장에서는 배경에 서 있던 파리 교외의 소박한 집이 무대에서 사라져 버린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천사 같은 딸’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알프레도의 인생에서 사라져 달라고 요구할 때 그 집은 작화막으로 덮여 사라지고, 황량한 데이지 꽃 벌판이 펼쳐지며 비올레타의 의지할 곳 없이 텅 빈, 그러면서도 순수한 마음을 상징한다. 2막 2장 플로라 저택의 파티 장면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일한 프로덕션인데도 공연 극장에 따라 효과가 상당히 차이 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합창단과 무용단의 수준이 극장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서울 공연에서도 합창단의 연기력과 무용단의 예술적 수준이 공연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비올레타가 돈다발로 모욕을 당할 때 전혀 연민을 보이지 않는 파티 손님들은 ‘사교 사회’의 무관심과 냉혹함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3막에서는 무대 바닥과 벽이 아무런 치장 없이 드러나, 비올레타가 품고 있던 사랑의 환상이 끝났음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3막이 끝나갈 무렵, 거울의 각도가 수직으로 바뀌면서 관객들은 극장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게 된다. 극장은 환상으로만 가득한 장소가 아니라 정서적·지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장치다. 후에 스테판 헤르하임의 <파르지팔> 연출에서도 사용된 이 같은 방식은 브록하우스가 젊은 시절에 몰두했던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극에 몰입했다가 이것이 현실이 아닌 극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현실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낯설게 하기’ 또는 ‘무대에 거리 두기’ 방식이다. 또한 브록하우스는 이 같은 방식으로 관객을 극에 참여시키고 있다. 관객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1992년 프로덕션이라면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요즘 공연 트렌드를 생각할 때 너무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더군다나 데커, 카슨, 콘비츠니 같은 도발적이고 현대적인 <라 트라비아타>의 해석을 체험한 관객들이 브록하우스의 이 연출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문화공간>과의 인터뷰에서 브록하우스가 적절히 지적했듯 “연출 작업은 공연에서 음악 및 작곡가의 의도와 함께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어야 옳다. 브록하우스가 희망한 대로, 적어도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뒤 극 속 인물들의 행동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16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The New Way

2016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The New Way

기간 : 2016.11.08 (화) ~ 2016.11.13 (일)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평일 19시 30분 / 주말 17시

티켓 : VIP석 28만원, R석 23만원, S석 17만원, A석 13만원, B석 9만원, B석 9만원, C석 5만원, D석 3만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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