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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누 리파티–브장송, 라스트 리사이틀

디누 리파티–브장송, 라스트 리사이틀

writer 이상민(음반칼럼니스트)

내년이면 어느덧 그가 태어난 지도 어언 100년이 되어가네요.
고고한 정신의 힘으로 육체와 현실의 고통을 이겨냈던, 피아노의 성자, 디누 리파티의 연주를 만나보세요.

디누 리파티

1950년 9월 16일, 대 문호 ‘빅토르 위고’의 고향이자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인 프랑스의 아름다운 고도(古都) ‘브장송’에서는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날은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던 날이었죠.
이날의 콘서트 그 어디에도 ‘마지막 리사이틀’이라고 쓰여 있지 않았지만, 그날 연주회에 참석한 모든 청중은 알고 있었죠. 이것이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마지막 연주회’가 되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에 ‘라스트 콘서트’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앨범들은 많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위대한 한 예술가가 도달한 가장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라스트 콘서트’가 미리 예고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연주자들이 연주회를 가진 다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등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연주회’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물론 간혹 은퇴를 작정한 연주자의 ‘라스트 콘서트’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디누 리파티의 연주회는 ‘예견된’ 마지막 연주회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비극적이었습니다.
당시 디누 리파티는 ‘백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 백혈병은 치료약과 치료법이 없던 불치의 병이었죠. 옛날 영화 팬들이라면 백혈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연인이 영화 속에서 이별했는지 아실 겁니다. 그 불치의 병이 당대에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누구나가 인정하던 디누 리파티를 비극처럼 덮친 것이었죠.

디누 리파티의 피아노 연주 모습

디누 리파티는 1917년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났습니다. 운 좋게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피아니스트 출신 어머니에게서 직접 피아노를 배웠죠. 1933년 16세 때 출전한 ‘빈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월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어리다는 이유로 1등이 거부되자, 심사위원이었던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에 반발해 사퇴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던 ‘파리 음악원’으로 그를 데려와 제자로 삼습니다.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파리’에서 데뷔한 디누 리파티는 금세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자리에 오르며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해 나갑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발발하며 루마니아가 점령당하자 그는 스위스의 제네바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제네바 음악원’ 교수로 교편을 잡습니다. 이때인 1946년부터 1950년 사이가 그에게 가장 빛나던 시기였죠. 거의 모든 레코딩이 이루어진 것도 이때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파티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팠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백혈병이 발병한 시기였죠.

디누 리파티의 책을 읽고 있는 모습

하지만 그는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굳은 의지로 이 불치의 병과 싸워나갔죠. 피아니스트로서의 업적 때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했고, 탁월한 교수이기도 했으며, 비평가로도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병마가 찾아오기 전과 변함없이 해나갔습니다. 물론 ‘월터 레그’가 이끄는 EMI 녹음팀과 함께 레코딩도 해나갔죠. 그와 동향인 루마니아 태생의 선배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재능 때문에 오히려 곤혹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답니다.
1950년 9월 16일 ‘브장송’에서 약속한 공연을 하겠다고 리파티는 공언했지만, 아내와 의사는 이를 극구 말렸습니다.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설득도 해봤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죠. 하지만 공연 당일 그는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을 기력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회를 고집하자 의사는 할 수 없이 그가 견딜 수 있도록 ‘모르핀’을 주사합니다. 이날의 연주회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는 그가 사랑하던 쇼팽의 왈츠를 연주회 후반부 프로그램에 넣었습니다. 그는 늘 20여 개의 왈츠 중에서 골라낸 14개의 왈츠를 자신만의 순서대로 배열하여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죠.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은 ‘왈츠 2번’으로 끝을 맺곤 했었습니다. 이날도 5번에서 시작한 왈츠는 2번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왈츠 1번을 연주한 후 마지막 2번을 연주하려던 그는 결국 연주를 멈추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그를 지탱하던 모르핀의 기운이 떨어져 끝내 마지막 곡을 연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건반을 한참 응시하던 리파티는 결국 ‘왈츠 2번’을 연주하지 못하고 무대를 떠나고 맙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관객들의 박수와 격려가 이어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가 다시 무대로 걸어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아 한 곡을 더 연주한 겁니다. 그 곡은 바로 바흐 칸타타 BWV.147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 되시니>였습니다. 리파티가 언제나 연주회의 첫 곡이나,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연주하던 곡이었죠. 결국 이 곡은 디누 리파티가 남긴 ‘백조의 노래’가 되고 맙니다. 죽기 전에 딱 한 번 슬픈 울음을 운다는 그 ‘백조의 노래’ 말이죠. 이 콘서트가 끝나고 리파티는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해 12월 2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 유명한 디누 리파티의 <브장송, 라스트 리사이틀> 실황 녹음에는 (당연히 그가 연주하지 못한) 쇼팽의 왈츠 2번과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바흐의 칸타타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리파티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녹음팀이 그만 녹음을 중단해버렸기 때문이죠.
언제나 이 앨범을 다 듣고 나면, 먹먹한 마음 한 켠에서 쇼팽의 왈츠와 바흐의 칸타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내년이면 어느덧 그가 태어난 지도 어언 100년이 되어가네요. 요즘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면, 고고한 정신의 힘으로 육체와 현실의 고통을 이겨냈던, 피아노의 성자, 디누 리파티의 인자한 얼굴이 높은 구름 속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디누 리파티 - 마지막 리사이틀(The Besancon Piano Recital)

디누 리파티 – 마지막 리사이틀
(The Besancon Piano Recital)

1번째 : 바흐 : 파르티타 1번 B플랫장조 BWV.825
( Partita No. 1 In B Flat BWV 825)

2번째 :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8번 A단조 K.310
(Piano Sonata No. 8 In A Minor K310)

3번째 : 슈베르트 : 즉흥곡 D.899 3번
(Impromptus D899 No. 3 In G Flat)

4번째 : 즉흥곡 D.899 2번 (Impromptus D899 No. 2 In E Flat)

5번째 : 쇼팽 : 13개의 왈츠 (13 Waltz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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