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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브랜딩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이승엽 사장이 들려주는 예술과 브랜딩

writer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훌륭한 예술콘텐츠를 바탕으로 해야 브랜딩도 가능하고 펀드레이징도 활발해진다. 마케팅도 콘텐츠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콘텐츠의 자신감의 한 측면은 관객이 흔쾌하게 호응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한동안 개그맨 조세호(김흥국의 조연으로)의 ‘프로 불참러’로 즐거웠다. 뜬금없고 황당한 원래 상황과 무한 반복하는 새로운 버전의 불참 시리즈가 탄성을 자아냈다. 큰 재미의 뜨거움은 CF로 이어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혹시 조세호의 프로 불참러를 모르시는 분이 계시면 검색해보시라)

지난주에는 느닷없이(!) 포켓몬이 기억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뜨거운 화제를 뿌렸다. 7월 6일 닌텐도가 미국에서 처음 출시한 포켓몬고 때문이다. 그로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광풍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조짐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 하나가 출시된 것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산업을 넘어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의 측면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굉장한 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회사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참석하는 파티가 있다. 나도 경품 협찬으로 동참했다. 내가 협찬한 소소한 물건 중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CD가 들어있다. 이것으로 조성진의 CD를 3개째 선물한다. 얼마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과의 협연에는 연주회후 사인회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안전상 이유때문라고 한다. 조성진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클래식음악계의 팬덤문화는 이미 디토의 경우에서 목격한 바 있다. 기존 클래식음악 관객과는 완전히 다른 관객층이 음악회장으로 몰렸다.

한국 공연문화에서 어느덧 팬덤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잡았다.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은 우리 공연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글로벌, 대규모 팬덤 뿐 아니라 소수의 충성도 높은 팬클럽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뮤지컬 뿐 아니라 연극, 무용 등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의 공연소비는 방식과 열기에서 일반 관객과 사뭇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비한다. 원하는 것을 공급하지 않으면서 대중이 호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희망이다. 그런 쪽으로 생각과 태도를 바꾼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대중이 원하는, 새로운 것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검증된 길을 따르는 것일 것이다. 성공한 사례에 이어지는 유사 상품은 큰 덕을 보지는 못하지만 불확실성은 줄일 수 있다.

포켓몬 GO! AR 형상화 이미지

오래전(아, 벌써 30년이다) 공연 일을 시작한 후 주로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쪽에서 일해 왔다. 그런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어떻게 하면 관객이 좋아할까’를 고민했다.(‘관객’은 여러 종류다) 어떻게 해야 관객이 흔쾌히 지갑을 열고 열일 제치고 달려올까, 어떻게 해야 자신의 공연 구매결정을 후회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충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 스스로 도모한 프로그램 중에 이 점에서 성공한 예가 별로 많지 않다. 우리 공연시장의 성공사례(극소수다)를 부러워하면서 비결이 뭔지 분석하고 탐구했다.(심지어는 가르치기까지 했다!)

공급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예술상품처럼 주관적으로 만들고 소비할 수밖에 없는 재화를 만들면서 공급자가 공급자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대부분의 예술상품은 흥행에 실패한다.(실패에는 백가지 이유가 있다) 동기를 공급자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러면서 관객과는 점점 멀어진다.

내가 일하는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아트센터에서 변화의 핵심은 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인정한다. 훌륭한 예술콘텐츠를 바탕으로 해야 브랜딩도 가능하고 펀드레이징도 활발해진다. 마케팅도 콘텐츠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콘텐츠의 자신감의 한 측면은 관객이 흔쾌하게 호응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콘텐츠의 모든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예술적 사명감과 성취욕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객이나 대중이 선택하지 않는 콘텐츠를,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곤란하다.

내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희망을 가져본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이지만 변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깜짝 놀랄, 예상치 못했던 빅히트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과 관객 사이에 걸쳐진 관계라는 다리가 좀 더 튼튼하고 균형 있게 그리고 쌍방향적으로 펼쳐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그렇고 포켓몬은 언제쯤 광화문에 나타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