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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춤추는 상상계(想像界), 호안 미로

20세기의 춤추는 상상계(想像界), 호안 미로

writer 김노암(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특별展>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작품들은 스페인 마요르카 호안 미로 재단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재단은 미로가 작가로서 가장 성숙한 시기와 말년(1956~1981년)을 보낸 마요르카섬에 있다.
그러니 이번 전시는 주로 미로의 가장 완숙하고 사려 깊은 노년기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 세르트(Sert) 작업실에서, 호안 미로(Joan Miró), 1974년

    세르트(Sert) 작업실에서, 호안 미로(Joan Miró), 1974년

  • 세르트(Sert) 작업실에서, 호안 미로(Joan Miró),팔마 데 마요르카(Palma de Mallorca), 1978년

    세르트(Sert) 작업실에서, 호안 미로(Joan Miró),
    팔마 데 마요르카(Palma de Mallorca), 1960년

  • 호안 미로는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인근의 몬트로이그에서 1893년 4월 20일에 태어났다. 보석상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가구 장인인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그림과 친숙하였다.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와 프란세스크 갈리의 사립학교에서 수학한 후 1919년 파리로 옮겨와 야수파와 입체파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당대 가장 진보적이며 야심적인 미술가들의 화풍을 경험하였다. 미로는 1922년을 전후해 초현실주의에 경도하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가장 독자적이고 조형적인 특징으로 인해 그의 그림을 보면 바로 그 작가가 미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안 미로는 강렬한 선과 색의 드로잉과 채색을 특징으로 하여 마치 암각화나 고대의 그림문자를 연상시키는 별, 여자, 새, 달 등 단순한 기호와 형태를 어린아이가 놀이하듯 표현했다. 그의 작품들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던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대체로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폭력과 비극으로 점철된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그림 속에 표현하기도 했다. 미로는 회화뿐만 아니라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시내티 호텔 벽화, 하버드 대학 벽화 등을 제작하며 미국의 전위적인 벽화 운동에 기여했다. 1948년 이후 바르셀로나와 파리를 오가며 회화, 조각, 판화, 도자기 등 다방면에 업적을 쌓았다. 195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판화 대상을 받았고, 동료 작가였던 초현실주의자 에른스트와 함께 러시아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의상과 무대 장치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 세르트(Sert) 작업실에서, 호안 미로(Joan Miró), 팔마 데 마요르카(Palma de Mallorca), 1960년

    세르트(Sert) 작업실에서, 호안 미로(Joan Miró),
    팔마 데 마요르카(Palma de Mallorca), 1978년

  • 호안 미로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그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등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나아가 그 중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로는 프랑스와 스페인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러시아 등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국제적인 활동을 한 작가였다. 그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당시 뛰어난 화가이자 동시에 현대 회화의 미학을 정초하는 데 이론적 공헌을 했던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 살바도르 달리, 파울 클레 같은 화가들과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등과 같은 문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활동하였다. 또한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과 무의식, 상상력의 철학자인 바슐라르의 사상을 원용해 미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미로의 작품 세계 또는 그의 예술관을 깊이 이해하면 20세기를 가로지르는 서구 현대미술의 가장 핵심적인 주류 미술가들과 예술가로서의 숙명을 공유하는 것을 알게 된다. 미로는 르네상스 이후 서구미술의 주류 회화였던 환영주의(Illusionism)에서 이탈하여 회화의 대상이 외부가 아니라 개인의 내부, 개인의 자아로 전환되는 과정과 현대미술이 심리학과 철학 같은 동시대 사상과 연동하며 추상미술과 개념미술로 나아가는 과도기를 온전히 체현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이론가이자 주창자인 앙드레 브르통은 미로의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성격으로 인해 브르통 자신이 주장했던 초현실주의 규칙들을 자유롭게 취사선택하는 태도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정작 “아마도 우리 모두들 중에서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사람일 것”이라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어찌 되었든 호안 미로를 말할 때 ‘가장 초현실적이며 가장 자유분방한 화가’라는 표현은 하나의 클리셰(Cliché)이다. 흔히 사람들은 초현실주의를 하나의 예술 운동이나 현대미술의 한 양식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 등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깊은 고뇌 속에 제안한 사상적 운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 Maquette for Gaud Ⅷ, 1975

    Maquette for Gaud Ⅷ, 1975

  • 20세기 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칼 마르크스의 사회철학의 주요한 영향이 이들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였고, 그 영향 속에 초현실주의가 출현하였던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무의식적 또는 숨겨진 차원의 힘을 끌어내 현대인이 자신을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 새로운 세계를 여는 힘으로 전환하려고 했던 것이다. 당대 지식인들은 초현실주의를 단순한 예술 장르나 양식에 제한된 협소한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러니 미로가 예술가로서 고투하는 시기의 초현실주의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운동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며 개인으로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이 좋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20세기 초중반의 서구사회 속에서 호안 미로의 위상과 그의 작품을 생각하게 된다. 호안 미로는 분명 초현실주의자로서만 머물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모색하는 낙천적이며 유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여러 시기로 구분되는 미술사적 분석의 관점과 상관없이 일생을 통해 화가로서 미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조형언어를 사용하여 감각적으로 감지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차원과 존재,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꿈’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차원을 표현하려는 예술가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지름길인 것이다. 꿈은 프로이트가 제기한 개인의 무의식이거나 또는 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일 수 있다. 나아가 오랜 시간 만들어진 문화의 원형처럼 인류의 무의식이나 꿈일 수 있다. 암각화와 같은 역사시대 이전의 기록들은 일종의 인류의 꿈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그런 식으로 초현실주의를 자기 내부에 있는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 고유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 사용하였다. 우리는 미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호들을 개인적 차원의 감각적 조형언어에 국한하지 않은 채 20세기를 가로지르는 문화와 사회를 상상하게 하는 기호와 상징으로 확장해볼 수 있다. 거기에는 소박한 카탈루냐 지방의 자연과 풍속, 20세기 산업 문명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와 미국 대도시들의 이미지와 다양한 기호가 호안 미로라는 예술가 개인의 감춰진 세계와 접촉하고 융합하고 있다.
    언젠가 시인 이성복은 “일체가 상형문자다. 정신병자나 아이들만이 그것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통찰한 시인 자신처럼 예술가들도 거기에 덧붙여야 한다. 아른거리며 춤추는 밤하늘의 성좌(星座)처럼 꿈과 기호와 상징으로 가득한 호안 미로는 그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

꿈을그린화가 호안미로 특별전

꿈을그린화가 호안미로 특별전

기간 : 2016.06.26 (일) ~ 2016.09.24 (토)

장소 : 세종 미술관1관, 세종 미술관2관

시간 :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입장마감 60분전)

티켓 : 성인 1만5천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 8천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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