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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한 권의 책을 읽다

기획전시 <백남준 그루브_흥>

전시, 한 권의 책을 읽다

기획전시 <백남준 그루브_흥>

writer 임연숙(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팀장) / photo 윤문성(세종문화회관 홍보마케팅팀)

지난 4월 미술관을 재개관한 후 선보이는 첫 기획전시. 백남준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비디오아트 창시자, TV 로봇으로 알려진 백남준 선생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고 지금까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존 전시와 달리, 작품의 외형뿐 아니라 작품 속 영상의 내용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백남준 비디오아트 작품 1

미술관에 들어서면 흑백 사진 속의 젊은 청년이 사색에 잠긴 듯 손을 턱에 괴고 우리를 맞는다. 한쪽 벽에는 불빛이 뿜어 나오는 브라운관 TV를 바라보고 있는 역시 젊은 남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백남준 선생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이제껏 보지 못했던 백남준의 젊은 모습이다. 20대의 백남준은 고운 턱선을 가진 출중한 외모의 지성미 넘치는 청년이다. 젊은 시절 주로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했고 작곡을 공부한 작가답게 음악과 연관된 퍼포먼스가 많았기에 그 시절의 자료를 찾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대한 젊은 시절의 영상기록물, 청년 백남준을 알 수 있는 사진, 그 시절에 남긴 어록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보여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큰 맥락이다.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 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세종문화회관의 기획전시는 음악인이자 미술가,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백남준의 다원예술의 최고를 보여주고, 세종문화회관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것에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세종문화회관에서 미술관의 역사는 공연장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면서도 일반적인 존재감에 있어서는 큰 온도차가 있다. 일찍이 1978년 개관 당시부터 공연장과 함께 전시장이 개관하였다. 당시 전시 시설이 부족했던 시대에 세종문화회관의 전시장은 규모가 있는 유일한 전시 시설로 대형 전시회가 열리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시대가 바뀌고 개인 미술관이나 박물관, 인사동을 중심으로 한 갤러리, 대형 공공 미술관들이 생겨나면서 세종문화회관의 미술관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미술계의 중심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재단법인 이후에 꾸준히 전시 공간을 확장하고 개선해 나가면서 2015년 4월 처음으로 1층에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게 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청년 백남준이 갖고 있는 많은 미술사적, 역사적 의미 속에서 특히 한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해 나간 도전과 혁신의 메시지를 찾아 부각시켰다. 60년대 초기 작품의 흔적은 미국 EAI(미국 영상자료원)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1984년 KBS 위성방송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굿모닝 오웰’을 비롯하여 세 점의 작품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1984년 7월 촬영된 TV 프로그램은 백남준 선생과 당시 미술·무용을 전공한 대학생들, 전문가들이 모여 백남준 선생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담으로 백남준 선생의 육성으로 직접 자신의 초기 활동과 작품, 생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과 자료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백남준 선생의 도전과 실험정신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백남준 연구자가 추천하는 도서 200권을 통해 백남준 선생의 작품의 근원이 되는 사상과 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백남준이 남긴 많은 어록을 만날수 있는데 작품 외에도 작가의 생생한 어록을 눈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전시를 보고 작가 백남준에 대한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어록이 또 다른 생각을 낳고, 생각이 생각을 낳고 이야기를 낳고 토론을 낳고 건강한 에너지가 생겨나는 전시 관람이 되기 바란다.

백남준 비디오아트 작품 2
백남준 비디오아트 작품 3

선진국과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는 첨단 경향을 수용해서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젊은 화가들에게 맛있는 음식보다 강한 이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_백남준,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 조선일보 인터뷰, 1993

“나는 한국인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에서 찾는다.
세계 경제의 경쟁력은 유통과 자유시장 기능인데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이 문제를 1백년 전에 이미 해결해 놓았던 것이다. 일제하에서도, 6·25 동란과 군사독재, 부정부패, 산업화, 재벌독점, 환경오염에서도 이 두 시장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_백남준, 1999년 2월 18일 마이에미에서 이용우 대담,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