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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극단 ‘1927’의 프로듀서 조와의 만남

영국극단 ‘1927’의 프로듀서 조와의 만남

writer 이승엽(세종문화회관 사장)

계획대로라면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호주의 브리즈번에 있어야 한다. 2월 22일부터 1주일간 열리는 호주공연마켓(APAM)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건으로 출장을 취소했다.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공식적으로, 말씀드릴 예정이다) 이번 출장에서 내가 기대했던 여러 만남 중 하나는 영국극단 ‘1927’의 프로듀서 조와의 만남이다. 극단 ‘1927’은 2008년에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비트윈> (원제는 이다)이라는 작품을 공연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2005년 20대 청년 4명이 창단한(그리고 지금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극단 ‘1927’의 첫 작품이었다. 2007년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큰 호평을 받고 다음해 바로 의정부에서 공연한 것이다. 프린지 기간에 에딘버러에 있었던 나는 막상 공연을 보지 못했다. 60석 내외의 작고 보잘 것 없는 공연장에서 올린 작품이 너무 큰 호응을 얻는 바람에 자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든버러 프린지로서는 매우 드물게 추가공연을 결정했지만 내 일정 과 맞지 않았다.


비트윈 공연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다음해 우리 축제에 초대했다. 이 해 의정부축제의 해외프로그램 중에서는 칠레의 ‘떼아뜨로 시네마(Teatro Cinema)’가 제작한 <신 상그레(Sin Sangre)>가 메인이었다. (이 공연의 세계 초연을 보기 위해 전 해에 칠레 산티아고를 갔던 기억이 난다) 폐막작이었던 아이슬란드 베스트루푸트의 <보이첵>도 축제가 미는 작품이었다. 극단 ‘1927’의 공연은 포트폴리오 차원의 배치였다. 혁신적이고 젊은 동시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비용은 매우 저렴했다. 극단 쪽에서 구입한 항공권은 중동을 경유하는 매우 저렴한 티켓이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 피곤한 여정을 아는지라 직항으로 바꾸라고 권해도 듣지 않았다. 극단 쪽에서 항공권을 구입하면 나중에 우리가 지불하는 방식이어서 비용부담은 우리 몫이었는데도 말이다. 숙소는 의정부 시내의 모텔이었는데 극단 멤버들은 매우 만족해했다. 출연료도 매우 저렴했는데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체 비용을 다 합쳐도 별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공연이 없는 하루는 의정부 쪽으로 해서 도봉산을 갔다 와서 행복해했던 것이 기억난다.이 공연은 의정부 외에도 한 군데에서 더 공연했는데 일반 관객들로부터는 특별히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다.(그런 기억이 없다) 이에 비해 공연 관계자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 젊은 창작자들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서울도 아닌 의정부에서, 대극장도 아닌 소극장에서 단 2회 공연하고 그들은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는 날 극단 대표인 수잔이 감사카드를 들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우리는 다시 만나자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대표를 포함해서 4명의 단원 대부분이 20대였던 이 극단은 그렇게 한국을 떠났다.그 뒤 나는 아비뇽축제에서 그들의 두 번째 작품을 보았다. 이번에는 프린지가 아니었다.


마술피리 공연사진

당당히 아비뇽축제의 공식 프로그램 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불과 몇 년 만에 이 청년집단은 주목받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조금 더 지나서는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오페라 프로젝트를 만났다. 이 칼럼에 연결한 동영상 맛보기로 볼 수 있는 <마술피리>다. 베를린의 코미쉐 오퍼(Komische Oper)의 프로덕션으로 2012년에 초연했고 이후 세계의 주요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고 있다. 독일의 몇 군데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시즌 레퍼토리화 되었다. 그 이후 연속해서 새 작품 소식을 들었다. 의정부에서의 공연이후 나와 극단 ‘1927’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어긋났다. 그러다가 금년 호주공연 마켓에 같이 참여하게 되었고 대화를 약속했다. 우리 세종문화회관과 뭔가 협업할 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젊은 예술가와 예술집단이 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이번에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인연은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술피리 공연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