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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존 듀를 만나다

연출가 존 듀를 만나다

writer 송현민(음악평론가)

  • 존 듀

  • Q.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당신의 홈페이지(www.john-dew.com)를 살펴보니 1985년(빌레펠트 극장), 1986년(뒤셀도르프 극장), 1988년(도이치 오퍼 베를린), 2002년(자를란트 극장)에서 구노의 <파우스트>를 올린 것으로 나와 있었다. 각기 다른 무대였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주제나 가치 같은 게 있었나?

    A. 첫 번째 연출은 30년 전이다. 사람의 인생처럼 내 작품도 늘 변해왔다. 하지만 오페라를 만들 땐 성악가들과 함께 해석하는 자세를 늘 고수해왔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생각이 비슷할 때가 많다. 구노의 <파우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악(惡)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악마라는 존재는 권선징악을 말하려 할 때 꼭 필요한 존재다. 악마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이웃집 아저씨나 아줌마 혹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악마라는 것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Q. 삶에 대한 회한과 젊어지고픈 욕망이 가득한 파우스트(테너), 그러한 욕망에 불을 지르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베이스), 순수한 사랑을 간직한 마르그리트(소프라노),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친오빠 발랑탱(바리톤) 등 모두 강한 성격의 캐릭터들이다. 연출가로서 누구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가?

    A. 파우스트가 아닌 건 확실하다. 내게는 너무 나약하기만 한 존재다. ‘악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나 유혹하기 쉬운 사람에게만 노래를 들려준다’라는 독일 속담에 딱 맞아떨어지는 인물이다. 마지막에 패배하긴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가 가장 흥미롭고 재밌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장 매혹적인 존재로 그리고 싶은데, 악마를 그렇게 그린다는 건… 한편으로는 위험하다는 생각도 든다. 괴테의 소설이나 구노의 오페라 모두 심각한 건 마찬가지다. 파우스트에게 버림받은 마르그리트는 끝내 미쳐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면면에는 유머도 있다. 출연자들은 이러한 두 요소를 잘 챙겨야 한다.

    Q. 젊음을 추구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와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하는 돈 조반니(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서로 닮은 것 같다. 혹시 두 주인공을 비교해줄 수 있는가?

    A. 파우스트도 돈 조반니도 흥청망청하지만, 결국엔 나약한 존재다. 다른 게 있다면 돈 조반니는 벌을 받고, 파우스트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구노의 <파우스트>는 괴테의 원작 중 일부만 다루고 있기에 오페라로만 보았을 땐 파우스트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반면 마르그리트는 자신의 자식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는다. 죄짓는 인간을 통해서 신의 용서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구노의 오페라는 앞서 말한 대로 해학적이면서도 이렇게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한다.

    Q.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1846)>,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1868)> 등 <파우스트>를 원작과 소재로 한 오페라들이 많다. 구노의 <파우스트>만이 지닌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일단 작품 자체가 굉장히 좋다. 각 대목마다 일화가 있는데 이를 알면 작품이 더 잘 보일 것이다. 1859년 초연 시에는 없었던 아리아가 나중에 추가되기도 했다. 영국 공연 시 발랑탱 역으로 출연한 유명한 가수가 이런 식으로는 못 부르겠다고 하여 서곡의 멜로디를 모티프로 하고 (영어) 가사를 붙인 아리아를 추가했다. 그 아리아만 저작권이 따로 있어 영국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다. 작품을 해친다는 이유로 구노가 원치 않은 부분이지만, 희한하게도 그 노래가 오늘날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결국 우리는 구노가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이다! 초연 시 (연극처럼) 대화체의 대사도 있었다. 그런데 극장 측에서 음악을 붙이길 원하여 결국에는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로 바뀌었다. 그런데 대화체를 레치타티보로 바꾸면서 내용을 함축하다 보니 원래 이야기하고자 했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비제의 <카르멘>처럼. <파우스트> 2막에 등장하는 군인들의 합창은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대목인데, 러시아의 오페라 <폭군 이반>에서 꺼내온 것이다. <파우스트>가흥행하지 못해서 극장장이기도 했던 연출가가 “관객들을 위해서 지난번 연주했던 <폭군 이반> 중 한 대목을 연주하는 게 어떻겠냐”라고 구노에게 제안해 이렇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대목도 ‘이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극의 전개상 굉장히 불편한 대목이겠지만… 어떡하나? 관객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제는 전혀 뺄 수 없게 되었다.

    Q. 서울시오페라단도 창작오페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홈페이지를 보니 세계 초연작이 많은데, 창작오페라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A.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1980~90년에는 주어진 초연 공연이 너무 많아서 줄이려고도 했다. 지금 상황을 통해 유추하자면 우리에게는 오래된 작품밖에 남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구노가 <파우스트>를 작곡하던 당시만 하여도 20~30년이 지난 작품을 올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1930년경부터 과거의 작품들이 오르기 시작했고, 작곡가들은 하나의 작품을 위해 2년 동안 전념하면서도 돈은 못 벌었다. 이렇게 경제성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페라 작곡을 그만두었던 것이고.

    Q. 한국의 성악가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이러한 활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그 비결에 대해 내 친구들은 보신탕에 있다고 하더라(웃음). 나는 한국인의 신체적 특징에 의한 우연과 열정, 그리고 대단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가지고 태어난 것과 그에 따르는 노력이다.

    Q. 끝으로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를 기대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겁내지 마시기를!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셔서 편안히 즐긴다면 즐겁고 흥미로운 저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대 디자이너 디르크 호프 아커를 만나다.

  • 디르크 호프 아커

  • Q. 연출가 존 듀와 어떤 계기로 인연이 되었나?

    A. 독일 다름슈타트 국립극장에서 2010년부터 대만 안무가 메이 홍 린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극장 측 제안에 도니 제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는데, 존 듀가 그 작품을 보고 함께하자고 했다. 당시 존 듀는 독일에서 스타 반열에 오른 연출가였고, 나는 보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의 무대 디자이너로 나를 발탁했던 것이다. 2013년에 다름슈타트 국립극장에서 <보체크>와 <라 트라비아타> 등을 함께했다.

    Q. <파우스트>는 파우스트가 늙음을 비탄하는 1막으로 시작하여, 축제와 사랑의 장면이 나오는 2~4막을 지나 비극적인 5막으로 끝난다. 노년의 철학자가 젊음을 되찾고 악마가 나오는 등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이야기인데 무대 디자이너로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A. 일렁이는 불빛 속의 비탄과 죽음, 칠흑 같은 어두움이 있는 영혼의 집이 떠오른다. 존 듀는 늘 배우, 스태프들과 장면을 같이 만든다. 무대는 완성된 이미지라기보다는 어떤 장면을 구현하기 위한 보조역할로 사용될 뿐이다.

    Q. 5막 ‘발푸르기스의 밤’에 사용될 무대 사진을 보았다. 5막은 메피스토 펠레스가 사는 지옥 같은 곳이 배경인데, 나이트클럽으로 설정되어서 좀 놀랐다. 순간, 이번 작품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남다르게 그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A.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사실 메피스토펠레스가 사는 곳은 ‘지옥 같은 곳’이 아니다. 악보에는 기쁨, 유혹 등의 말로 표현되어 있다. 잠깐 ‘발푸르기스’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것은 독일 신화에 나오는 축제다. 4월 30일과 5월 1일 사이에 걸쳐 있는 밤에 소녀들은 나체로 춤을 추면서 남편감을 찾고, 불을 뛰어 넘으며 나쁜 영혼에 물든 마음과 몸을 정화시킨다. 이러한 성격을 알면,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유혹하는 클럽을 ‘발푸르기스의 밤’의 배경으로 설정한 존 듀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악마적인 분위기의 집, 전쟁터, 숲 등이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배경이었다. 이번 작품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지만 <파우스트>에서 무대는 그저 상황이 벌어지는 곳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연출하는 인물들이다. 존 듀와 나는 이것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Q. 이력을 보니 2003년에 연출가 브루노 고르스키와 <파우스트>를 함께한 적이 있다. 당시 무대 디자인의 특징과 이번 무대의 특징을 비교해줄 수 있나?

    A. 2003년 작품은 모든 면에서 고전적으로 묘사되어 따분했고, 군인들이 나오고 축제가 벌어지는 2막만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게 표현되어 나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이 경험을 하고 다른 작품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파우스트>에는 고전적이고 역사적인 묘사를 선호하지 않기로 했다. 설령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어쨌든 당시의 배경은 배를 건조하는 오래되고 거대한 조선소로 설정하여 굉장히 특별했다. 다양한 층으로 구성된 나선형의 무대를 만들어 중앙에 거대한 십자가상을 세웠는가 하면, 축제장, 마르그리트 집의 정원 등이 모두 멋졌다. 장소를 돋보이려고 세부적인 요소를 줄인 무대들이었다. 서울 공연에선 전적으로 존 듀의 연출 콘셉트, 즉 최소한의 요소만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살짝 이야기 하자면 여러 색상의 빛을 이용하여 영혼과 그들의 집을 묘사하거나, 메피스토펠레스와 마르그리트가 대화를 나누는 교회 장면에선 고해 성사실 같은 다양한 공간도 선보인다.

    Q. 끝으로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를 기대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파우스트> 같이 인간의 정신을 다룬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구노의 음악을 너무 사랑한다. 내가 <파우스트>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을 여러분들도 느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