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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체임버홀에 숨겨진 소리에 관한 이야기

세종체임버홀에 숨겨진 소리에 관한 이야기

writer 서춘기(예술단 운영 본부장, 실내음향학 박사)

실내악 전문홀인 세종체임버홀. 클래식 공연장의 핵심인 음향 설계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세종체임버홀의 모습을 음향적 측면에서 분석해보기로 한다.

체임버홀 무대

최근에 국내 어느 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의 같은 넘버를 3개의 유명 오케스트라가 1개월 간격으로 연주한 적이 있다. 동일한 악장에서 어떤 지휘자는 조금은 경쾌하게, 또 어떤 지휘자는 말러의 예술적 세상과 자신을 짊어지고 방황하는 심정을 그대로 옮기려는 듯 우울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른 표정을 담아야 하는 공연장은, 그 연주의 색깔을 더욱더 깊게 입히고, 특징을 일깨우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 때 관객은 그 연주 지휘자의 시(詩)적인 눈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뮤지션들의 감정을 마음껏 담아낼 수 있는 공연장은 어떠한 공연장일까? 특히 오페라 하우스도 연극 극장도 아닌, 뮤직홀인 세종체임버홀이 어떠한 음향적 요소들을 갖춰야 관객들에게 이러한 감성적 느낌을 담을 수 있는 공연장이라 할 수 있을까?

예민하고 섬세한 음색으로 음악의 속살을 드러내게 한다

세종체임버홀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음색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잘 들리면서도 디지털적으로 충분히 측정될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매우 작고 부드러운 소리까지 분명하게 들릴 정도로 정숙성을 유지하고 있어 음악의 속살을 아주 잘 드러내게 한다. 음악적 특색이 예민하고 섬세하며 풍부한 음색을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무대이기에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을만하다. 홀에서의 연주를 더욱 잘 심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무대 후벽을 기울기 5°를 가진 3차원의 경사면으로 디자인하여 만들어야 했고, 객석 벽면은 다양한 크기의 곡면으로 형상화해야 했다. 또한 G.F.R.C라는 재료를 증기로 쪄서 압축하여 밀도를 50kg/㎡으로 만들어 입사되는 음들이 최대한 확산될 수 있도록 하였다.

목적에 부합되는 긴 잔향 시간으로 소리가 아스라한 여운을 머금는다

세종체임버홀은 소리가 점점 더 강해져서 그 소리의 크기가 최고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긴 잔향 시간(reverberation time)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좌석 수가 400~500여 석의 체임버홀들의 평균 잔향 시간은 1.3초이다(예를 들어 Berlin, Kleinersaal in Konzerthaus(440석) 1.1초, Amsterdam, Kleinersaal in Concertgebouw(478석) 1.25초, Tokyo, Tsuda Hall(490석) 1.33초, Kanagawa, Higashitotsuks Hall(482석) 1.2초이다). 443석의 세종체임버홀의 잔향 시간은 1.45초로 현(絃)악기들을 비롯한 다양한악기들의 잔향 여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홀이다. 이러한 잔향 시간 확보를 위하여 지붕 슬라브를 오픈 절개하여 천장 고를 상승시켜 용적을 높였고 객석 마감 천장을 오픈 천장으로 설계하였다. 세종체임버홀이 더 긴 잔향 시간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연속되는 두 연주음에서 첫 번째 음이 두 번째 연주음의 잔향 시간 안에 묻혀 또렷하게 들을 수 없는 상태이지 않을까? 세종체임버홀은 연주음이 아스라한 여운을 주면서도 적절한 잔향 시간으로 연주 스피드에 따라 자유롭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연주 공간으로서의 목적에 부합한다.

소리 하나 하나가 뭉개지지 않는 훌륭한 명료성과 작곡자의 복잡하고 뒤엉킨 감정까지 살려낼 수 있는 홀이다

세종체임버홀은 모든 소리가 뭉개지지 않도록, 즉 하나의 소리(passages)와 소리가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방지한다. 뭔가 알 수 없는 음악이 아니라 작곡자의 복잡하고 뒤엉킨 감정까지를 알아낼 수 있는 충분한 명료성(horizontal and vertical clarity)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명료성 확보를 위하여 객석과 무대의 벽 마감재 등을 단단한 밀도(50kg/㎡)의 재료로 선정하였고, 객석의 형태를 나뭇잎 형상(reverse fan type)으로 하여 객석 뒤쪽으로 갈수록 음압과 명료성의 약화를 방지하였다. 측벽의 반사음 에너지가 객석으로 가장 잘 들어오는 벽체의 기울기를 1:10으로 계획하였는데,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음악의 박자, 반복, 구의 수, 상대적 음량, 음의 역학 변화, 양상블의 정밀함 등과 관련해 연주자들의 연주 특성을 잘 비교하여 들을 수 있는 선물을 주는 곳이다.

높은 확산성으로 첫사랑 연인의 백 허그 같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풍성한 느낌을 주는 홀이다

세종체임버홀에서 연주하는 리차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 소리는 풍성하고, 풍만하고, 따뜻한, 첫사랑 그 여인이 포근하게 백 허그로 안아주는 것처럼 나를 에워싸고 있는 그런 느낌을 주었다. 관객들은 이러한 감동을 찾아 공연장을 선택하게 되고 그곳에서의 연주에 감동하며, 그러한 음향적 기능이 있는 공연장을 좋은 공연장이라 한다. 이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하여 세종체임버홀은 벽체를 반지름을 달리하는반구(hemisphere) 형상으로 계획하였고, 반지름이 큰 벽면은 저주파 대역을, 반지름이 작은 벽면은 고주파 대역을 확산시키도록 하여 공간감(spatial impression)을 확보하였다. 에코 발생 없이 본래의 악기가 갖는 소리보다 좀 더 크고 넓게 생성하였고, 저음역대 소리는 파워풀하게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으며 좋은 밸런스, 조합 그리고 앙상블을 얻게 되었다.
실제 음향적 표현을 빌리자면 1-IAC CE3 값(값이 클수록 확산성에 유리)이 위의 네 홀의 평균 값은 0.68을 가지고 있으며(Takayuki Hidaka and Norico Nishihara, 2004) 세종체임버홀은 이 값이 0.72로 확산성(spaciousness)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첫사랑 연인의 포근한 가슴을 느낄 수 있는 풍성한 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