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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新春) 쏘는 다섯 작곡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신춘 음악회>

새봄(新春) 쏘는 다섯 작곡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신춘 음악회>

writer 송현민(음악평론가)

진성수가 지휘하는 <신춘 음악회>는 다섯 명의 젊은 작곡가들의 곡들로 채워진다.
봄의 기운과 생각을 묻힌 음표를 그리기까지, 그 생각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백찬

김백찬

김백찬

태평소협주곡 1번 침묵

아무 말 없이 잠잠한 정적은 때로는 공허가 가득한 소리보다 더 값진 법이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 곡은 태평소 협주곡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악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표현하고 싶은 것은 ‘침묵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이란 말을 하기에 앞서 생각을 하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죠

생각이란 형상은 없지만, 그것이 음악으로 전달되었을 때는 조용하고 고요하다는 느낌보다는 머릿속에 계속 떠돌고 반복되며, 어떤 때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즈음에서 ‘침묵’이라 이름 붙인 곡에 요란한 소리의 태평소를 쓴 이유가 나온다.
“이 복잡함을 악기로 표현하는 데 있어 소리가 명료하면서도 뚜렷하고, 한편으로는 투박하며 시끄러울 수도 있는 악기를 생각한 것이 바로 태평소입니다.”
어쩌면 독자는 제목과 그 의미 때문에 철학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백찬은 본인 스스로 “음악이 어렵지 않고 대중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라고 한다.
이 곡은 극히 단순한 표현으로 조용히 시작하여 점점 복잡해지며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는 형식이다. 여기에는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몰아가는 ‘시나위’의 형식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김백찬만의 실험도 들어가 있다. 그것을 정리하면, 하나, 전통 장단의 특징 중 하나인 분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빠른 박자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박자를 잘게 나누어 촘촘히 진행하는 느낌을 주어 상승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둘, 악기별로의 다양한 음색을 이용한다. 서로 다른 음이 동시에 울리는 화음보다는 대위법적인 방법을 통하여 두 개의 음색을 결합시켜보는 것이다.
이처럼 <침묵>에는 태평소의 소리와, 장단과, 음색의 실험이 담겨 있다. 소리 없음의 침묵을 향해 새로운 소리의 울림을 탐사하는 그의 곡은 어떤 ‘묵언(默言)’을 들려주련지.

박경훈

박경훈

박경훈

서경별곡

‘서경별곡’을 소재로 했다. 이는 고려시대에 불린 가요로 지금의 언어로 번역하면 많은 이들은 이 문장에 눈길을 줄 것이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임과 떨어져 홀로 천 년을 살아간들 임을 사랑하고 있는 마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박경훈은 고려가요 선율에 김소월의 시를 얹어 편곡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서경별곡’을 소재로 했었는데, 정서가 비슷한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시와 만났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서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감이 느껴지는 고려가요 선율의 매력을 발견했었죠. 경기민요와 비슷하면서도 오묘하고 신비한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서 이 선율로 관현악곡을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서경별곡’의 원 선율과 제가 창작한 선율을 어울리게 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드라마틱한 구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죠.” 곡 전체를 일관하는 정서는 ‘이별’과 ‘그리움’이다. 우리는 그의 곡을 연주하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단소 소리가 나올 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경별곡’의 선율이 단소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소의 음색을 활용해보고자 했습니다. 단소와 함께 생황도 등장해서 생황과 단소가 함께 연주하는 ‘생소병주’ 느낌의 음색도 들을 수 있을 듯하고요.” 박경훈은 친근한 멜로디를 풀어내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신춘(新春), 새봄이 되면 다시 듣고 싶은 곡 중 하나가 그가 대학생 때 작곡한 실내악곡 <봄을 여는 노래>이다. “제목처럼 봄을 여는 밝고 서정적인 느낌의 곡입니다. 개인 연주자나 각종 단체에서 그 곡을 연주해도 되냐는 문의를 많이 해옵니다. 곡을 쓸 때 목표로 하는 것이 연주자는 다시 연주하고 싶은 곡, 청중은 다시 듣고 싶은 곡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곡도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초연 후에도 많이 연주되고 들을 수 있는 곡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박한규

박한규

박한규

풍류도

인격의 도야를 목적으로 멋스럽게 노는 것. 그리고 그 노는 것을 도(道)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것. 이것을 ‘풍류도(風流道)’라고 한다. “바람을 뜻하는 ‘풍(風)’, 물의 흐름을 뜻하는 ‘류(流)’가 합쳐진 풍류라는 말은 단순히 바람의 흐름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파악해야 하는 자연이기 때문에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멋스럽게 음악을 갖고 놀자’라는 의미에서 한국음악이 지닌 운치를 새롭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박한규에게 바람은 음악과도 같은 존재다. “음악과 바람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지만, ‘시간’과 ‘공간’을 재료로 하고 소리와 느낌으로 그 존재를 알 수 있죠. 그 바람(음악)이 유유하거나 자적하게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역동적으로 흐르기도 합니다.<풍류도>의 선율은 우리나라에서 불던 바람일 수도 있고, 또는 외국의 어느 나라, 혹은 과거의 어느 지방에서 부는 바람일수 있습니다. 이를 여러 선법과 화성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항상 ‘전통스럽게’ 곡을 쓰는 것이 작은 목표 중에 하나라는 작곡가. 그 고집은 바람을 ‘담은’ 음악에서, 음악을 ‘닮은’ 바람에서 춤추고 놀 것이다. 전체를 지향하는 관현악곡이지만 각 악기들의 결을 올올히 살리는 게 이번 곡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
“각 악기들이 펼치는 독주 형태의 합주를, 그리고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기법을 함께 쓰는 것을 즐깁니다. 마치 브리튼이 작곡한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처럼 각 악기를 소개하듯이 연주하며 각 음색의 특징을 살리는 것처럼 말이죠.”
박한규의 <풍류도>가 오르는 봄. 그에게 ‘봄’은 익숙한 시간이자 곡의 소재가 될 때가 많았다. 가야금 독주곡 <이화우 흩뿌릴 제>는 ‘봄날의 그리움’을 담은 곡이다. 국악관현악 <민요 오색 타령>에는 사계절에 걸맞는 민요를 새롭게 편곡하여 담았다. 봄에 다가올 바람(風)과 그 흐름(流)을 담은 박한규의 <풍류도>를 기대해보자.

신윤수

신윤수

신윤수

광야(曠野), 진동과 흐름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이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그렇다. 신윤수의 <광야(曠野), 진동과 흐름>은 이육사의 시 ‘광야’를 소재로 했다.
“음악을 듣는 동안에 ‘광야’의 구절들이 계속 귓가에 맴돌고, 굉장히 차분하고 웅장한 관현악적인 사운드가 울리게 될 겁니다.”

그가 일군 ‘음향의 광야’가 펼쳐지면 우리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내에 있는 한 남성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된다. “‘광야’의 텍스트를 작품 흐름에 맞게 연결해주는 역할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중요해요. 전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이 바로 ‘시의 구조를 토대로 음악적인 서사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인데, 이것을 안정적으로 잡아주죠.”
사실 남성의 목소리는 낭송을 위한 것도, 노래를 위한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악기라는 생각으로 인식하고 작곡했습니다. 목소리에 시가 입혀져 있을 뿐인 것이죠. 이렇게 텍스트(시)를 사용하는 이유는 관객을 위한 배려 때문입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으니, 저만의 방식으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다고 할까요?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라고 묻는 거죠.”
신윤수의 박사 논문은 음향 분석을 통한 창작국악의 악기 편성에 관한 연구다. “논문을 쓰면서 공부하고 실험했던 결과물을 시도”하고 있다는 그는 이 곡에서 “관현악의 다양한 소리가 쉬지 않고다양한 형태로 진동하며 흘러가게 하고 싶다”고 한다. ‘신윤수적’인 편성에 대한 연구와 고민 끝에 하나의 대금 파트를 둘로 나누어, 관현악단 양편에 배치하기도 했다. 생명력이 긴 음악을 작곡하자고 제 자신과 약속한 작곡가, 자신의 생각과 새 시대를 담되 그 모티프를 끊임없이 전통음악에서 찾는 작곡가, 그의 생각과 음악이 달릴 ‘광야’에서 그의 음악과 마주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김보현

김보현

김보현

창과 관현악을 위한 사철가

<사철가(四節歌)>는 사시사철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단가(短歌)다.
“세월더러 가지 말라고 부르짖는데 화자가 어찌 내내 초연하고 담담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편치 않을 때, 감정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본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곡은 변박과 템포 변화가 자주 등장합니다.”

김보현의 곡에는 자연을 담은 것들이 많다. <대단히 울창한 숲>에는 변화하는 사계절과 하늘, 지저귀는 새와 생명의 숨소리를 담았다. 시들어버린 꽃의 은은한 향을 소재로 국악관현악곡 <침묵의 꽃>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니 사시사철의 흐름을 담은 <사철가>를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창과 관현악을 위한 <사철가>는 김수연 명창의 <사철가>를 바탕으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채보하려면 여러 번 들어야하니까. 계속 듣고 싶어지는 소리를 고른 것이죠.”
실제로 김수연의 소리는 꾸밈없고 담담하다. 단가를 소재로 했지만 이번 공연에서 협연하는 이는 판소리꾼이 아닌 바리톤(장철)이다.
“성악가가 판소리의 시김새를 어색하게 흉내 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바리톤만의 멋스러운 느낌으로, 소리꾼이 부른다면 전통적인 맛을 살려내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이 곡에는 판소리의 ‘아니리’와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를 절묘하게 섞어서 엇모리장단과 결합한 부분도 있습니다. 아니리는 호흡의 자유를 빼앗긴 김보현의 창과 관현악을 위한 사철가 것이고, 레치타티보는 상상도 못 했던 엇모리와 함께 하는 셈이죠. 익숙한 소리와 구성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작은 실험과도 같아요.”
창과 관현악을 위한 <사철가>는 관현악이 반주로만 국한되지 않고 주도적으로 곡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 대금의 비중이 많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악기들 간의 상호작용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관현악이 노래에 반응을 할 때도 있는, 목소리와 악기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곡이다.

신춘음악회 봄의 노래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신춘 음악회>

일정 : 3.24(목)

장소 : 세종M씨어터

시간 : 7:30pm

티켓 : R석 3만원, S석 2만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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