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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 당기다 깨닫는 사랑의 진실

밀고 당기다 깨닫는 사랑의 진실

writer 이용숙(음악평론가)

5월 4일부터 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 공연된다.
시골 마을에 사는 젊은 남녀 간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온 가족이 감상할 수 있는 동화 같은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름다운 음악, 동화적 스토리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번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약장수 둘카마라의 아리아(메트 오페라)

약장수 둘카마라의 아리아(메트 오페라)

19세기 이탈리아 시골 마을. 늦여름의 뜨거운 햇볕 아래 밀 추수가 한창이다.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과 처녀들이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지주의 딸인 여주인공 아디나는 다른 쪽 그늘에서 책을 읽는다. 농촌 인구 대다수가 문맹이던 시절, 책을 읽는 젊은 여자는 그리 흔치 않았다. 아디나를 흠모하는 네모리노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리아 ‘그녀는 얼마나 예쁜지(Quanto e bella)’를 노래한다. 아디나는 공부도 많이 했고 모르는 게 없고 얼굴까지 예쁜데, 자신은 가진 것도 없고 글도 못 읽고 아는 것도 없으니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한걱정이다.
마침 이 마을에 주둔하게 된 군대의 미남 장교 벨코레가 나타나, 아디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꽃다발을 바치며 ‘그 옛날 파리스처럼(Come Paride vezzoso)’을
노래한다. 벨코레의 자신만만한 구애에 아디나는 “난 급할 거 없어요” 하며 여유를 부리는데, 정작 다급해진 건 네모리노다.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가고 나서 네모리노는 아디나에게 다시 사랑을 애걸해보지만 아디나는 제발 희망을 버리라고 충고하며 클라리넷과 함께 ‘산들바람에게 물어봐(Chiedi all’aura lusinghiera)’라고 노래한다. 바람이 왜 이 꽃 저 꽃으로 돌아다니는지, 그건 바람의 속성이고 자신은 바로 그런 바람이라고 설명하는 노래다. 그러자 네모리노는 ‘시냇물에게 물어봐’라는 아리아로, 아디나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우직하게 한 길만 따라 결국 바다로 흘러가는 냇물,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정반대의 성격과 환경을 지닌 두 사람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이때 이 마을에 약장수의 마차가 도착한다. 19세기 초 유럽의 약장수란 신약을 개발한 의학박사나 약학박사 또는 사기꾼으로, 우리나라 약장수와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만병통치약을 판매했다. 이 약장수는 피가로 같은 이발사처럼 ‘만능해결사’이며 시민사회의 새로운 오페라 주인공이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시골양반들, 내 말 좀 들어봐요(Udite, udite, o rustici)’라는 노래와 함께 ‘모든 병을 고쳐주는 만병통치약’을 내놓는 약장수 둘카마라. “혹시 옛 이야기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랑의 묘약도 파느냐”고 묻는 순진한 네모리노에게 싸구려 포도주를 묘약이라고 속여 비싼 값에 판다. 그러면서 하루 24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거짓말을 한다. 약장수도 도망칠 시간을 벌어놓는 것이다.

묘약, 마법 아닌 돌팔이 약사의 사기 행각

가짜 묘약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네모리노는 평소와 달리 아디나를 보고도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부대와 함께 다음날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벨코레가 급히 청혼하자 아디나는 건방져진 네모리노를 골려주려고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에 절망한 네모리노는 ‘아디나, 내 말을 믿어줘(Adina, credimi)’라며 아디나에게 결혼 날짜를 하루만 늦춰달라고 애원한다.
아디나와 벨코레의 결혼 잔치가 시작된다. 네모리노는 얼른 약효를 얻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사랑의 묘약을 한 병 더 사려고 하지만, 이미 가진 돈을 약 사는 데 다 써버린 처지다. 입대하면 당장 현찰로 20스쿠디를 받는다는 벨코레의 말에 네모리노는 입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돈을 받아 묘약 한 병을 더 사 마신다. 그때 동네 처녀 자네타는 네모리노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소문을 다른 처녀들에게 몰래 전해준다. 그 얘기를 듣고 동네 처녀들이 다들 네모리노에게 달려들어 아양을 떨자, 이 사실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드디어 묘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줄 알고 무척 기뻐한다. 한편 약장수에게서 ‘묘약’ 얘기와 네모리노의 입대 동기를 전해들은 아디나는 그 절실한 사랑에 마음이 움직인다. 이때까지 아디나와 네모리노는 네모리노가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결같은 진심과 정열에 감동받은 아디나의 눈에 후회의 눈물이 고이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네모리노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을 벅찬 마음으로 부른다.
“이제 아디나도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해. 저 눈물을 보면 알아. 아디나의 뛰는 가슴을 한순간이라도 느껴볼 수만 있다면, 내 한숨을 그 숨결에 섞을 수만 있다면. 그때는 죽어도 좋아. 더는 바랄게 없어.”
벨코레에게 돈을 주고 입대 계약서를 되찾아온 아디나는 네모리노에게 계약서와 함께 자유를 되돌려준다(아리아: ‘받아, 너는 이제 자유야(Prendi, per me sei libero)’). 사랑이 이루어지자 네모리노는 묘약의 힘을 더욱 믿게 되고, 약장수는 모두의 감사와 환호 속에 마을을 떠난다.

둘카마라와 아디나의 이중창(바덴바덴 축제극장)

둘카마라와 아디나의 이중창(바덴바덴 축제극장)

초연 때 인기 없었던 ‘남몰래 흘리는 눈물’

극 속에서 아디나가 읽는 책은 중세 기사문학 <트리스탄>이다. 이 작품을 토대로 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신기한 마법의 약이 등장한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포기했던 남자 주인공 트리스탄과 그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자살을 결심했던 여주인공 이졸데가 함께 이 약을 마시는 순간 세상의 의무를 잊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중세 문학작품은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말로 이 묘약의 강력한 효과를 표현한다. ‘내가 마시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약’이라는 비과학적 특성도 흥미롭다. 바그너의 이 걸작이 탄생하기 전에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는 희극성과 진지함이 뒤섞인 멜로드라마 <사랑의 묘약>으로 이 중세의 트리스탄 전설을 패러디했다. 묘약으로 시작된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만든 것. 마법이 통하는 중세가 아닌 근대의 이야기이다 보니, 묘약 역시 마법의 효력이 없는 돌팔이 약사의 사기 행각으로 풀이된다. 도니제티 오페라의 대본은 원래 프랑스 작곡가 다니엘 오베르가 작곡했던 외젠 스크리브의 대본 <미약(Le Philtre)>을 토대로 삼았다.
이 오페라의 인기곡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처음부터 히트곡은 아니었다. 바순의 서글픈 선율에 실려 나오는 이 노래가 이제까지 진행된 극과 음악의 경쾌하고 들뜬 분위기를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의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는 “이 장면에 이 아리아가 들어가면 극의 흥이 갑자기 깨진다”면서 도니제티를 열심히 말렸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이 오페라에 넣지 말자는 얘기였다. 그러나 도니제티는 이 아리아를 꼭 이 대목에 넣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대본가가 염려한 대로 1832년 밀라노 초연 때 관객들은 이 아리아에 전혀 열광하지 않았다. ‘생뚱맞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후 관객들은 차츰 이 아리아의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선율과 절절한 표현력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노래는 <사랑의 묘약>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공연시간 내내 기다리고 기대하는 최고의 아리아가 되었다. 테너 주인공이 가장 유명한 아리아를 부르는데다 극 전체의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이 오페라는 흔히 ‘테너의 오페라’라고 불린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자신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불렀던 30개가 넘는 배역 가운데 가장 사랑했던 배역으로 네모리노 역을 꼽았다. 그러나 소프라노 주인공 아디나 역시 고난도의 벨칸토 기교를 소화하면서 동시에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해야 한다. 배경이 ‘19세기 이탈리아 시골 마을’로 설정되어 있지만, 이 오페라는 시대적, 지역적인 배경을 바꾸기가 수월한 편이어서 종종 현대적인 배경으로 연출된다.
장조와 단조가 빠르게 교차하며 활기찬 음악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번갈아 나타나는 <사랑의 묘약>은 오케스트레이션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약점은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한 부분이 한순간도 없을 정도로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오페라다. 외모와 부, 총명함 등 외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춘 듯하지만 자존심 강하고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지닌 아디나는 입으로는 사랑을 비웃지만 마음으로는 네모리노 못지않게 진실한 사랑을 갈망하는 주인공이다. 비극이라면 이 두 사람이 죽음으로 결합하겠지만, 희극의 결말은 언제나 평범한 주인공이 사랑, 재산, 고귀한 신분 등의 세속적인 행복을 통째로 얻는 것. <사랑의 묘약>도 역시 모두 다 잘되고 막이 내리는 해피엔딩이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오페라 사랑의 묘약

기간 : 5.04(수) ~ 5.08(일)

장소 : 세종대극장

시간 : 수·목·금 7:30pm / 토·일 3pm

티켓 : VIP 12만원, R석 8만원, S석 5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문의 : 02-39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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